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b8b6c6beb7e7c5cd.jpg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인 1517, 마틴 루터는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교회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구교의 부패와 대립했고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제 곳곳에서 개혁을 기념하며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에 성령의 강력한 부흥이 도래하기를 소원하며 문제의 진단과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이신칭의에 대한 성찰

지난 126일 미래교회포럼(대표 박은조 목사)은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300여 명의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개신교의 중심교리인 이신칭의(以神稱義)’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했다.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라는 제목으로 발제에 나선 박은조 목사는 값싼 성공주의 복음에 휘둘린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성하기 위해 포럼을 준비했다고 했다. 이신칭의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인의 신분을 얻는다는 의미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공로를 강조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면죄부를 판매해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했다.

반면에 개혁가들은 칭의(구원)가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고 보았기에 개혁의 기치를 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까 세월이 흘러가면서 교회의 세속화라는 새로운 병폐를 낳았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신앙의 목표가 이루어졌으니 자연스럽게 세상의 부와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신칭의를 오해한 것이지 결코 신앙의 목표인 성화(聖化)를 다 이룬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는 성화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광야 연단과정을 통해 죄성과 정욕에 지배받아 나타나는 더러운 마음과 행실이 연단을 받아 정결케 되어야만 성화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칭의가 은혜로 주어진다는 점만 강조하고 생활 속에서 연단을 받아 성화되는 것을 소홀히 해 죄와 방종를 초래하여 세속화되고 말았다.

포럼에서 박영돈교수(고려신학대학원)칼벵의 기독교강요에 따르면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은혜의 두 면이다. 성화 없이 칭의만으로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순종과 회개)의 열매 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15:8) 하신 주님은 행함의 열매를 강조하셨다. 자칫 화석화된 교리에만 집착하다보면 삶과 인격이란 알맹이를 놓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지금 우리는 루터나 칼벵과 같은 개혁자들이 개혁초기에 역설한 교리를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진리를 밝게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는 교회의 세속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목회자들은 큰 교회 큰목회만 바라고 고생과 가난이 예상되는 개척교회를 꺼리게 되었다. 성도들은 이신칭의로 의인이 되었으니 가정·교회·직장·사회에서 남을 비판·정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어두운 행실로는 결코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강단에서 증거 하는 말씀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에 만연된 세상적인 누룩을 제거할 수 있는 진리, 자신의 내면을 밝히 비춰주는 진리의 말씀이 필요하다. 목회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영성생활을 철저히 해야만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강단에서 작은 죄나 육신에 속한 애정과 욕망들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분별할 수 있는 말씀이 증거 되어야만 생활 구석구석의 어두운 마음과 행실들을 회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고 했다. 이 빛은 천국의 태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춰지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과 행실을 변화시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빛이다. 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빛은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하루는 유대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와서 주님께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는가물었다. 주님은 몸을 구부려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 쓰면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들이 거듭 재촉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셨고, 이 말씀에 가책을 받은 자들이 하나둘 그 자리를 떠나고 여자만 남았다. 주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정죄하고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사람들은 선한명분을 앞세우며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남의 잘못에 대해 비판과 정죄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하지만 주님의 빛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세상적인 부와 인기·명예·권세를 다 누려가면서 내 자존심 세우려 한다면 결코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진리의 빛을 비추는 교회

교회는 촛대요 사역자들은 별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1:20). 둘은 모두 어둠을 밝혀야만 그 존재의미가 있다.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면서 빛과 어두움에 대한 진리를 강력하게 증거 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도들은 매일매일 자신을 성찰하여 부끄러운 행실을 회개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성화될 것이다.

예수님의 빛은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한 성품이 담겨진 빛이므로 사람들의 마음과 행실을 밝게 해주고 어두운 부분을 치료하여 정결하게 하신다. 우리가 빛 된 말씀을 실천하고 주님의 생활인격을 꾸준히 본받고자 노력할 때 어둠은 물러가고 마음과 행실이 정화(淨化)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내하는 영성이 필요하다. 저 영원한 천국에서 받게 될 영광과 상급을 위해 이 땅의 어려움과 고생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진리가 필요하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경건주의자들이 개신교의 부패와 타락을 염두에 두고 외친 구호이다. 개혁된 교회는 한 번 개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2017,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종교개혁의 이신칭의교리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전통에 대한 위협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부흥으로 연결되는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