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난로 불붙이기

살고 있는 교회 꼭대기 5층 사택에선 연탄난로를 쓴다. 날림공사로 지은 건물이고 벽의 사분의 삼이 유리창이기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옥상정원을 만들어 복사열로 인한 더위는 선풍기로도 이길 수 있게 되었으나 추위가 문제였다. 물론 깔아놓은 난방필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전기료가 많이 부담이 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연탄난로였다. 연탄 공급의 문제는 운동할 겸 힘 좀 쓰면 되고 가스 누출의 문제는 조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염려는 난로가 막상 가동되자 뚜껑 위의 물방울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난방비는 오분의 일로 줄었고, 열효율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효용성이 매우 컸다. 고구마 굽기, 말린 우엉차 만들기, 빨래 말리기, 계란프라이, 나물 볶기, 더운물 등등. 더욱 좋은 것은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 자연스레 대화의 장을 연다는 것이다. 공기가 훈훈하니, 아들 녀석은 자전거 정비 같은 것도 그 작은 거실에서 했다. 조금 불편해도 자기 방에 자율 감금되는 것보다 나았나보다.

그런데 작년까지 잘 타던 난로가 올해엔 웬일인지 여러 장의 번개탄으로도 붙지 않았다. 연통을 다시 설치하고 난로를 분해해서 청소도 하고, 또 다시 연통을 만지고. 고민이 됐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이라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아이들은 벌벌 떨며 방에서 나왔다. 다급해져 난로에다 손을 얻고 기도를 드렸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풍랑 이는 바다를 명하사 잠잠케 하신 예수님.”

이렇게 고친 것도 여러 개인데 이 난로만은 고집불통이었다. 난감했다. 아무리 기도하며 생각해봐도 불이 붙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연기만 일어나고 번개탄만 타버렸다. 불이 붙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연탄을 옥상으로 갖고 가 간신히 세 구멍 정도 불붙여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번개탄도 겹 샌드위치처럼 이중으로 넣었다. 또 회개하며 기도했다. ‘주님, 글쎄 제가 죄인인데요, 이번에 안 되면 그냥 난방비로 아까운 헌금이 다 들어갑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불이 일어났다. 아니 기적이었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다. 지난 늦은 밤에 회개하며 켜지지 않는 복사기에 손 얹어 기도했을 때처럼 신기한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불붙지 않는 영혼은 얼마나 곤고한가. 이렇게 저렇게 노력도 하고 애를 쓰긴 하지만 정작 불이 붙지 않는 신앙, 성령의 뜨거운 불이 일어나지 않는 가엾은 영혼, 주님 사랑의 불이 붙지 않는 싸늘한 영혼. 회개하며 또 기도했다. 나든 남이든 관계없다. 불이 붙지 않는 모든 영혼들은 참으로 가엾기 짝이 없다. 형식만 남고 껍데기만 그럴듯한 불 꺼진 난로 같은 사람들이 나와 당신이 아닌가.

주님의 긍휼은 이 작은 것에도 임한다. 애를 태우며 주를 부르는 곳에 임하신다. 은혜를 구하는 가난한 심령에 불을 붙이신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