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언덕에 올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중략)

윤동주 / 별 헤는 밤

 


아브람과 아브라함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기꺼이 떠났다. 그가 이방 땅에서 바라보았던 별들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소망이며 믿음의 상징이었다. 힘들고 지치고 고단 할 때마다 올려다본 밤하늘엔 하나님의 약속이 반짝였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상이 매우 크다.” “주님, 제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상속자는 엘리에셀 뿐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네 몸에서 태어날 자라야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이 약속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나는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벨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아브람은 정말 많은 위기를 넘겼다. 가나안 땅에 살다가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이주하기도 했고, 그곳에서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길 뻔하기도 했다. 다섯 왕이 쳐들어와 자기가 머물던 지경을 유린하고 조카 롯까지 잡아가자 집에서 기른 사병 318명을 데리고 단까지 올라가 롯을 구해내고 약탈해갔던 모든 것을 되찾기도 한다. 하란을 떠날 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소명은, 어느 곳에 가든지 복의 근원이 되라는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12:3)이라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되었다. 아브람은 존경받는 아버지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나아가 존경받는 아버지를 넘어 열국의 아버지인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나는 너의 방패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됨으로 자신의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싶어 한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곧 떠도는 존재라 했다. 떠돌이 즉 나그네 인생은 그리 낭만적이진 않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싸움이다. 아브람이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장면을 보면서 비겁함에 치를 떠는 우리도, 그 상황에는 아내에게 역시 누이가 되어 달라고 요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상이 매우 크다.”(15:1) 하나님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패를 자처하신다. 광야 길을 가는 나그네 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하고, 삶에서 그나마 누리던 아주 조금의 물질이나 몸에 질병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아마 아프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른다.

다윗은 인생 말년에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장엄한 고백을 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구해 주십니다.”(삼하22:3)

그 어려운 생의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든든한 방패처럼, 산성처럼 자기를 지켜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방패 덕분에 지금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은 현실의 고통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아라”(6: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6:28)라고 하셨다.

현실은 여전히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열국이 주어지는 것이다.

방패가 든든한데, 우리는 내가 가진 창을 보면서 절망을 하곤 한다. ‘내 창으로 무엇을 하지?’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면 되고, 내 약한 창을 향해 적이 다가오면 하나님의 방패가 막아주심을 경험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너의 방패!’라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보다 더 멋지고 웅장한 사랑고백이 또 있을까. 우주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말 아닌가.

윤동주가 1941115일에 쓴 시 별 헤는 밤, 일제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한글 사용을 금지했을 때였다. 조선의 젊은이로 산다는 것은, 고통과 번민을 넘어 가슴에 어두운 돌덩이를 안고 사는 듯한 날들이었다. 그때 그리스도인이었던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별 하나 하나에 그리운 이름들을 붙여 본다.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 어머니, 그리운 벗들과 자기가 흠모하는 시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그 이름들을 부르며 그의 마음에 새로운 결단이 임했으리라. 이 어둠의 시간을 지나가야 한다. 견디고 승리해야 한다.

어떤 힘도 뚫을 수 없는 든든한 방패를 가지신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견뎌야 한다.

너의 별을 바라보라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에 총총한 별처럼 많은 약속을 해주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크고 작건 간에 주님이 주시려는 것을 기다리며 온전히 사모하면 결국, 별은 우리의 소망으로 뜬다. 약속을 믿고 기도하고, 오래 참고 견디는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만나던 날, 각자의 하늘을 선물로 받았다. 그 하늘엔 각자에게 주시고자 하는 수많은 선물들이 꿈처럼 달려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우리의 길을 응원하고 응원한다. 지치고 힘든 날, 견디기 버거운 날들이 이어지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해 보라. 하나 하나에 윤동주 시인처럼 이름을 붙여주면서 나의 꿈을 되새겨 보라.

소화 테레사는 하늘에 뜬 수많은 별 중에 가장 작은 별 하나를 고르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예수님, 당신은 아시지요? 당신만을 사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내가 원치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하늘엔 예수님만을 사랑하다가 그 사랑 때문에 죽고 싶은 순결한 꽃을 닮은 별이 가득 떠 있었다.

평소 몸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그녀는 성인(聖人)들을 본받고 싶어서 육신을 뛰어 넘는거룩한 사랑의 길을 선택했다. 쇠퇴해진 겉 사람은 후패해서 24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지만, 결국 속사람은 그토록 꿈꾸던 거룩한 삶이 되어 하늘의 별로 떴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 사랑의 길을 따라가고 싶어 한다. 그녀가 말한 작은 길, 사랑의 길은 누구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작은 일들을 실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길은 작은 실천을 요구한다. 내가 보고 싶지 않거나 미운 마음을 들게 하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가서 곁에 앉고, 그에게 말을 걸고, 미소를 지어 보이고, 사랑실천을 하는 일들이 그 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생각하면서 조금 편안히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앉지 않는 것도 그 길이다. 온유한 언어를 사용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타인을 향해 끊임없이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들이 그 길이었다.

나의 하늘엔 오늘도 별이 가득하다. 주님이 주신 별들인데, 내 믿음과 사랑이 약해지만 별은 빛을 잃어버려 반짝이지 못한다. 주님을 신뢰하면 그 빛이 더해지고 찬란해진다. 동방박사들도 삶을 바쳐 별을 따라갔고, 아브라함도 그 별로 인해 믿음의 근원이 되었다.

우리의 별을 보면서 한번 이름을 붙여 보라. 거룩함, 사랑, 오래 참음, 용서, 열매, 절제, 화평, 용기, 겸손, 부흥, 회복. 우리의 하늘이 예수님이 주신 거룩하고 순결한 이름들로 빛나게 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복의 통로들이 되기를. 지금 우리는, 소망의 언덕에 올라 우리의 별을 헤어보는 중이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