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요

지난 몇 주간동안 얼굴에 수심을 가득 안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활발하게 잘 뛰어 놀고 크게 잘 웃던 아이가 웃음도 점점 사라지고 우두커니 붙박이처럼 앉아 있을 때가 잦아졌다. “왜 그러니?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힘없이 한마디 툭 내 뱉고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깼니?” 큰 눈을 깜빡거릴 뿐 긴 침묵만 돌아왔다. “동생이랑 싸웠어?” “…” 알 수 없는 침묵만 또다시 돌아왔다. 지난 주 찬양율동을 할 때도 입만 가볍게 달싹달싹하고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힘없이 앉아 있었는데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몇 주간이 지나서야 그토록 밝던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아무런 의욕도 없이 앉아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친 아빠는 오랫동안 치료를 받느라고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셨기에 엄마가 식당 일을 하면서 근근이 가정을 꾸려 나가셨다. 고된 일에 지친 엄마는 삶에 대한 고달픔과 부대낌 속에서 남편과의 잦은 마찰로 인해 결국은 심하게 다투신 후 두 자매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가셨다.

엄마 없는 외로움과 슬픔에 그 아이는 혼자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벌써 몇 주간이나 되었는데, 그 사실도 모른 채 엉뚱한 질문만 한 나에게 얼마나 서운했을까? 긴긴 밤을 엄마 없이 잠들어야만 했던 그 아이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나의 아픔에는 그렇게도 쉽게 고통을 호소하며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찾기에 바쁘면서 정작 여리고 여린 작은 아이의 흐느낌을 듣지 못하다니 마음 한편이 아파왔다.

그날 밤 저녁에 성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조용히 들려오는 듯 했다. ‘네게 맡긴 영혼의 눈에 눈물이 맺힐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네게 맡긴 영혼의 가슴이 슬픔으로 멍들어 갈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그 아이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의 십자가의 아픔도 느낄 수 없단다.’

그동안 세심한 배려와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의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고 그저 의무감으로 형식적으로만 대했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랑 없이 던진 나의 말 한마디가 그 아이에게 또 얼마나 아픔과 상처가 되었을까?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건만, 목소리만 높았지 나의 가슴은 얼음냉장고였다. 아이의 아픔을 싸매어주며 안아줄 따뜻한 가슴이 나에게는 없었다.

사랑 없이 전한 수많은 말씀들이 그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 수 있었을까? 입에 들어가는 순간 그 즉시 다 녹아버릴 아이스크림만을 주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우리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아파하시고 귀를 기울이셨는데, 나의 모든 상처와 고통을 피 묻은 가슴으로 안아주셨는데 말이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가시들을 피 묻은 손으로 하나하나 직접 뽑아주셨는데 말이다.

난 정말 나의 힘든 십자가의 무게만 느끼고 원망불평만 곧잘 하였다. 사랑 없이는 십자가를 지고 갈수 없음을, 사랑 없이는 어떤 사역도, 어떤 영혼도 주님 앞으로 이끌 수 없음을 잊고 살아왔다. 그 날 밤 주일날 성가대에서 불렀던 “주님이 결박당하실 때”라는 찬양이 떠오르면서 한참을 울었다. “주님이 결박당하실 때 나의 마음 괴로웠고/ 주님이 매 맞고 능욕 당하실 때 나 어찌할 줄 몰랐으며/ 주님이 못 박힐 때 내가 흔들림이여 흔들림이여/ 내 눈에서 오열의 파도가 넘치며 나의 마음 걷잡을 수 없어라/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요 그의 죽음 내 죽음이라/ 그러기에 그의 부활도 내 부활이네 그러기에 그의 부활도 내 부활이네.”

주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고 주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아픔을 어떤 희생과 손해를 보더라도, 어떤 아픔과 쓰라림을 겪더라도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함을. 그들의 아픔이 진실로 나의 아픔으로 느껴져야 함을. 그때야 비로소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을, 그날 밤 주님은 나의 작은 가슴에 찾아와서 일깨워 주시고 계셨다.

살갗이 다 벗겨진 어깨에 올려진 그 무거운 고통의 십자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셨던 우리 주님처럼, 내 고통의 무게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울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싶다.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