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학교에서 내는 감사의 수업료

얼마 전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이지선 자매. 13년 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몸의 55%이상의 3도 화상을 입고 난 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지금까지 40번이 넘는 대수술과 극한의 화상치료를 해오면서 절망의 끝자락에 설 때도 많았다. 예전의 아름다웠던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흉측하게 문드러진 얼굴과 양손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한 마디씩 잘려나간 8손가락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절망과 슬픔일수밖에 없는 조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수술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순간 의사는 말했다. “손가락을 절단해야 합니다. 신경을 살릴 수 없습니다.” 매몰찬 의사의 진단에 손만은 살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손가락 절단을 하려고 수술실로 들어갈 때 어머니에게 그래도 더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했다. 왼손보다 오른손 검지가 조금 더 길어서 손을 쓸 때 훨씬 편하다고 했다. 두 마디를 절단하지 않고 한 마디만 절단한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끼며 깊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손톱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속눈썹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귓바퀴가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없어진 지금, 그런 작은 것 하나 조차도 너무 소중하다는 진실 된 고백을 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리만큼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습관처럼 감사할 일을 찾고, 감사라는 작은 고백을 통해 희망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정작 가볍게 생각하고 소홀히 여겼던 것들을 병이나 어떠한 사고로 잃어버린 후에야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이면서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큰 은총과 사랑임을 얼마나 자주 잊어버리는지.

이지선 자매의 고백을 들으면서 부끄러워졌다. 순간 눈 하나 깜박이는 것,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것,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차게 감사할 일인가.

‘만입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 말할 수 없고 다 갚을 수 없네.’ 추상적으로 다가왔던 말씀이 가슴에 박히듯 또렷이 새겨졌다. 만개의 입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는 다 표현할 수 없으리라! 감사하지 못하더라도 투정부리고 불평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어쩔 때는 입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는다. 순간순간 부끄러운 죄를 범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볼 때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천만번 죄인이구나! 많은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는커녕 부족한 것을 한탄하고 있으니, 참 무지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작은 고통의 선물을 주셨다. 몇 년 전 본드독이 오른 얼굴피부는 자주 가려움증을 동반하고, 피부과를 집 드나들듯이 하게 했다. 이제는 평생 안고 가야 할 괴로움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동안 예민해진 피부에 순간순간 속으로 불평하고, 귀찮아하며 힘들어했다. 이를 겪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감사하지 못했었다.

이지선 자매는 자신이 겪은 사고가 “당한 것이 아닌 만난 것이라”고 했다. 사고를 만난 후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고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는 질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했을 것이다. 가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참된 기쁨과 감사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도 자신의 소유를 잃어버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내 것을 버리고 잃어버릴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가까이 닿아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리고 소망 가운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롬5:3-5). 그 사랑이 내 것이 되기를 갈망하며 작은 날갯짓을 해야겠다. 나의 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가 넘쳐 날 수 있기를.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순간임을 온전히 깨닫기 까지 순간순간 감사로 나아가리라. 고난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까지 광야학교에서 훈련시키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값비싼 수업료이다. 수업료를 감사함으로 낼 때, 그 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석으로 변신한다. 고난의 담금질을 통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빛난 보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