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순국기념관 순례

주일에 있을 야외예배로 인해 추석 연휴 끝에 제암리 순국기념관 답사를 하였다. 오는 길엔 여러 생각과 기도를 하며 자전거로 돌아왔다. 길가엔 차로 갈 때 볼 수 없었던 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 , 잠자리, 나비 그리고 길 건너던 동물이 차에 부딪혀 죽은 흔적들이 보였다.

제암리는 일제시대 때, 3.1운동의 여파로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다 발생한 폭력으로 인해 앙심을 품은 일본 군인들이 주민들을 교회 안으로 몰아넣은 후 무차별 사격과 방화로 스물세 명을 태워 죽인 곳이다. 평화롭고 소박하게 살던 그들을 점령하여 강압하므로 자유를 잃어버린 주민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억압하던 그들이 불법이었다.

발안까지의 길은 예전엔 그저 작고 한적한 숲길이었다. 그때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나비도 잠자리도 들짐승들도 사람과 부딪히지 않았다. 그들의 자유와 평화를 사람들이 억압하지도,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그들이 도전하지도 않았다. 공감과 화목이 있었고, 양보와 순화가 있었다. 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의 자유였다.

그러나 아스팔트 큰 대로가 생기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더 빨리 목적지에 갈 수 있어 흐뭇해했다. 그들은 재주와 능력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국가 경제가 많이 성장했다며 대견해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억울한 죽음들이 생겨났다. 늘 하던 대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곤충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다. 짐승들은 늘 가던 자기들의 길을 가다 치여 죽었다. 그리고는 길 한편에 떨어져 말라버린 것이다.

누구 하나 이 죽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생각, ‘그것들이 왜 하필 길에 나타나 치여 죽었나, 발전에는 손실도 발생하는 거야, 그래도 경제적으로 길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야.’

이런 생각들이 바로 제암리에서도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죽인 일본인들이 만든 법질서를 지키는 방법이요 논리였다.

어떤 단체건 체제를 강화하고 질서를 잡으려는 곳엔 이와 같은 죽음이 반드시 따른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느냐다. 적어도 양심적인 참회가 있어야 한다. 필요악처럼 피해와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해도 미안함과 죄송함을 갖는 것이 바른 일이다. 부딪혀 죽든 나가 죽든, 그 죽음의 책임이 내부에도 있었다면 어찌 필연과 성장의 논리만으로 떳떳할 수 있을까.

일본의 교회들은 제암리 교회의 방화 사건을 부끄러워하며 헌금을 모아 새 교회를 지어주었다. 그들 나름의 사죄였다.

우리는 어떤 사죄를 하는가. 내 가는 길에 부딪혀 죽어가는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일 때 어떤 사죄를 해야 할까. 질주할 때는 보이지도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천천히 가 봐야 한다. 가면서 길 가에 누가 부딪혀 아파하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언제나 사죄할 마음으로, 그런 각오로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 가을엔 그렇게 순례의 길을 가자.

박상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