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공

 

이용도 목사님이 기록해 놓았던 일기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나의 위치는 피조물, 나의 활동은 공, 나의 순종은 연이라는 글귀이다.

“주님께서 마음대로 주무르시옵소서. 저는 주무르시는 대로 주물림을 받는 점토(粘土)와도 같습니다. 무엇을 만들든지 성의(聖意)대로 만드시옵소서. 무엇이 되든지 제가 관계할 바 아니었습니다. 주님, 저는 온전히 주의 피조물인 것뿐입니다. 주님은 저의 창조주시며 저는 주님의 조각품입니다.

저는 주님이 놀리시는 대로 놀 공입니다. 저는 공을 봅니다. 줄 맨 공, 아이가 줄을 당기면 오고 늦추어 보내면 가곤 하는 그 공을 봅니다. 그 공은 나요, 그 주인은 주님이었습니다. 주님, 사랑의 줄로 저를 매시옵소서. 그리고 마음대로 주님께서 놀리시옵소서. 주님의 팔을 움츠려 끈을 당기시면 저는 주님의 앞으로 따라 들어올 것이요, 팔을 펴서 끈을 푸시면 저는 또 굴러나갈 것입니다. 주님의 팔의 운동대로 들고 나며 구르고 노는 공입니다.

눈도 귀도 입도 수족도 다 없는 그냥 공입니다. 나의 눈도 버리고 귀도 잘라 버리고 수족도 버리고 전체가 구르기 쉽게만 되게 하소서. 그것들이 있으면 나는 구르기에 꺼리길 것이 심히 많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가 보는 대신 보아주시고 듣는 대신 들어주시고 움직이는 대신 주님께서 움직이게 하실 것이오니 나의 귀, 눈, 입, 코, 손과 발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이까. 곧 주님의 눈이 저의 눈이요, 주님의 귀가 저의 귀였습니다. 저의 눈은 내 자체에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습니다. 그런고로 저는 주님을 통해서만 보고 주님을 통하여서만 듣고 주님을 통하여서만 걷고 동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연입니다. 줄을 매어서 주인이 놀리는 대로 노는 연입니다. 오르게 하면 오르고 내리게 하면 내리고 좌로 하면 좌로, 우로 하면 우로, 퇴김 주는 대로 줄을 풀면 나가고 감으면 오고하는 연입니다. 연은 항상 그 얼굴을 주인에게만 향하고 있음이 특색이로소이다. 만일 뒤집혀서 등이 주인 편에 온다면 이는 벌써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언제든지 주님의 편에 얼굴을 대하고 주님의 말만 듣게 하옵소서. 말을 안 듣게 될 때 연은 땅에 곤두박질 하는 것입니다. 오 주여, 나는 말 잘 듣는 연입니다.

주님은 나의 산성이요, 반석이요, 구원의 뿔입니다. 제가 어디를 가서 서든지 따라다니며 지켜주시는 산성입니다. 저는 그 안에서 적탄(敵彈)을 피하며 안전을 얻나이다. 저의 이상이나 세상의 어떤 시설 위에도 있지 않겠나이다. 저는 오직 주님 위에서 서야만 안전을 얻겠나이다. 저는 주님의 공이요, 연이요, 주님의 아이입니다.”

눈도 귀도 입도 수족도 없는 공. 무엇 하나 가진 것 없어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주님 손에 들려진 것으로만 만족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의 손에 들려져서 일이 느리게 진행되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든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옆의 사람이 더 앞서 간다고 해도 투기와 경쟁심이 일어나지 않는 그냥 주님의 공으로만 만족하면 얼마나 좋을까. 못난 자아를 주님이 팍팍 주물러 주사 제 생각과 의지를 누르시고, 자아가 다 부서지는 그날까지 주님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공이고 싶다.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