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두 포기의 벼를 한꺼번에 거머쥐는 것이 ‘겸할’ 겸(兼)이고, 여기에 ‘말씀’언(言)이 추가되면 ‘겸손할’ 겸(謙)이 되는데, 이는 일치하지 않는 주장을 한데 묶는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상대의 의견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좋은 결론으로 이끌어 가려는 참된 마음이 말로 표현된 것을 의미한다.

실과 실(薩)을 잇는 것이 ‘이을’ 계(系)인데, 세대(世代)를 이어주는 것은 자식(子)이다. 그래서 ‘손자’ 손(孫)이며, 자손들은 선조의 얼을 이어받아 마땅히 지키는 것이 도리인데, 이러한 도리를 지켜 나가는 것이 ‘겸손할’ 손(遜)이다. 따라서 겸손이란 선조를 대하듯 상대를 떠받들고 제 몸을 낮춘다는 뜻이다. 이것은 형식적이 아니고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선교사 도그 멜란드 부부는 평생을 브라질의 깊은 산골에 들어가 선교하며 이름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그곳 주민인 폴리오 인디언들은 처음에 멜란드 부부를 “백인”이라 불렀다. 이는 과거에 자신들을 총칼로 위협하고 괴롭힌 백인들을 향한 증오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개의치 않고 이들 부부는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의 의료활동으로 철저히 섬기는 삶을 살았다. 그러자 이들은 “헌신적인 백인”으로 불렸다.

이들 부부는 폴리오 인디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인디언들의 풍습에 자신들을 맞추었더니 이제는 “백인 인디언”이라고 했다. 어느 날 인디언 소년 하나가 부상을 당하자 이것을 본 이들 부부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겸손의 모범을 보였듯이(요13:4-17),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소년의 발을 씻기고 치료해주었다. 이를 지켜본 인디언들은 이들 부부를 하늘이 보내준 “하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흑백의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다. 이곳의 흑인 교회인 성시온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일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목사님의 아이디어로 이번에는 평소에 자신이 고맙게 생각한 사람의 발을 씻어주기로 하였다. 이때 한 사람이 늙은 흑인 여자를 앞세우고 나왔다. 그는 대법원 판사인 올리버 씨였다. 올리버 판사는 대법원장으로 내정된 사회의 저명인사였다. 이러한 그가 자신의 여종을 데리고 나와서 발을 씻기자 교회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과 고요가 감돌았다. 그는 하녀의 발을 다 씻기고 그 발에 입맞춤까지 했다. 그리고는 “마르다는 내 집의 종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내 자녀들을 돌보며 발을 씻어주는 것을 수백 번 보았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올리버는 판사직조차 쫓겨나고 말았다. 위로차 방문한 목사에게 올리버 씨는 “판사직이나 어떠한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먼지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과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여종의 발을 씻기면서 사실 자기 자신의 더럽혀진 마음을 씻었던 것이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낮아지고자 하는 진실된 마음이 발을 씻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참 겸손을 배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남을 나보다 높이고 내 생각보다 남의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다. 손해를 보고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시와 멸시와 조롱을 받더라도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낮은 자가 아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시나 종의 형체를 입고 산 제물이 되셨던 우리 주님이 하늘보다 높아지지 않으셨던가(히7:26). 하나님께서 친히 높이실 것이다.

송흥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