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겠습니다
지난 8월 2박 3일간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구국 금식 기도 대성회”가 열렸다. 첫날 저녁 강사로 북한에서 949일간 억류되었던 임현수 목사님의 간증에 큰 감동이 되었다. 30년간의 목회생활을 하며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 “1등 종교 배우”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그때부터 영성훈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도를 하셨다. 그런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그렇게 2, 3년이 흘렀는데, 18년 동안 북한을 150번 방문하면서 다방면으로 도움을 준 목사님에게 북한으로부터 초대장이 왔다.

당시에는 전혀 예상을 못하고 북한을 방문한 목사님은 “최고 존엄 모독죄”라는 죄목으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캐나다 국적이라 사형은 면했지만 첫날 외국인 특별 교화소 독방에 갇혔을 때는 억울함과 충격에 “이런 모순된 재판으로 내가 평생 노동하면서 죽어야 하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라며 분노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곳은 감옥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수도원이었으며, 자신의 생애 중 그 기간이 가장 큰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고백을 하셨다. 또한 완전한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기간이었고 ‘쾌락, 인기, 명예, 권력’은 행복의 신기루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묵상하는 중 가장 모순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분은 예수님이셨음을 깨닫자 원망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되었다고도 하셨다.

목사님은 돌이 섞인 소량의 음식과 과도한 노동으로 두 달 만에 몸무게가 23kg이나 빠져나갔고, 때로는 한 시간마다 잠을 깨우는 고통도 감수해야만 하셨다. 몇 명의 간수가 퍼붓는 악랄한 언어폭력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이틀 동안 스물아홉 번의 설사가 나오고 3개월이나 지속되기도 하셨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들면 뒤통수를 세차게 때렸기 때문에 항상 고개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다녀야 하는 비참한 생활이 이어졌다. 더욱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려 절단을 해야 하고 목숨까지 경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8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노동이 기도라는 것을 배우셨고, 자신의 교만과 허영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700개의 강의 안을 만들며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셨다.

“협소한 공간과 심한 악취, 간수들의 거친 욕설과 폭력과 수치가 계속 이어지는 이곳에서는 2년 이상을 못 버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과 함께 하루를 살겠습니다.” 

남편목사님이 북한에서 행방불명되어 비명횡사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오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일 텐데 사모님이 보낸 중보기도 요청의 내용 또한 큰 감동이 되었다.
 
“목사님을 위해 이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어둠의 땅이지만 빛의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만 바라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아버지의 마음을 더 많이 주시도록, 그 땅의 영혼을 품고 목숨 걸고 눈물로 기도하는 목사가 되도록, 변장된 축복을 잘 감당하도록, 끝까지 하나님 영광만 드러내도록, 외롭지 않고 끝까지 잘 감당하도록. 교우들의 평강을 바라며 임금영 사모 드림.”

목사님은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공포와 외로움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드시며 하루하루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준비하셨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간수들 중 목사님이 매일매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변화가 되기도 했다. 주님과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내일의 염려와 근심도, 내게 주어진 십자가도 죽음의 공포도 뛰어넘을 수 있다.

“14번 얻어맞으면 14k가 된다. 18번 얻어맞으면 18k가 된다. 24번 얻어맞으면 정금이 된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계속 귓전을 맴돈다. 하루하루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가노라면, 하루하루 이 좁고 협착한 길을 걷노라면 언젠가는 우리 또한 정금같이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중세 수도원의 영성가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로 매일 아침 인사를 하였다. 먼저 본 사람이 “Memento mori”하면 “Memento mori”라고 답을 한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우리말로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하루의 삶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대를 바라보며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우리 또한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게으름과 미지근함을 떨쳐버리고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이 세상을 사랑하던 이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남긴 그 어떤 것도 먼지와 구더기를 피하지 못한다.”고 성 베르나르도는 말한다. 덧없는 부귀와 명예에 마음을 쏟지 말자. 이 땅의 행복의 신기루를 좇다가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말자. 비록 주님과 함께 걷는 걸음이 가시밭일지라도 매일매일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이 행복하다(계14:13).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갈망하고 기뻐하며 받아들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과 헤어지지만, 대신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들에게 성 알폰소 리그리오의 영적 교훈이 새롭다.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집은 그대의 집이 아닙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여관입니다. 육신의 집은 무덤이 되고, 거기서 최후의 심판까지 머물 것입니다. 그대의 영혼은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원한 집으로 가게 됩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 세상 그 어떤 왕궁도 천국의 도성에 비하면 마구간에 지나기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그대는 하나님도 없이 타오르는 불과 고통의 바다에 갇힐 것입니다. 얼마나 그렇게 지내느냐고요? 수억, 수천억 년이 지나도 지옥의 고통은 늘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대가 영원히 머무를 집이 어떤 집이 될지 알고 싶습니까? 그대에게 합당한 집은 바로 그대가 직접 고른 집일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이 세상의 것들은 자취 없이 사라진다. 비록 우리가 주님 때문에 초가산간에 살고 갇힌 자가 될지라도 욕설과 핍박과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님과 오늘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삶이다. 영원히 거할 도성의 집을 하루하루 열심히 쌓아올리기에 힘을 내자.

“나와 동행하시는 주여, 나의 사랑과 진실을 나의 것으로 만드시어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나와 동행하시는 주여, 당신의 기도와 염려를 나의 것으로 만드시어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나와 동행하시는 주여, 당신의 부르짖음과 기도를 나의 것으로 만드시어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여 주십시오.”

하천풍언의 기도가 우리의 오늘을 결단케 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 주님과 함께 걷자. 영원한 행복을 찾아서 이 길을 걷고 또 걷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