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는 시간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 있다. 꽃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 꽃에게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다. 나무뿌리가 힘을 내어 양분을 받기 시작하고 가지 끝까지 수분을 밀어 올리는 순간은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다.

여름에 하늘이 열리면 만물이 생동하는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천지를 뒤흔든다. 가을날 새털구름이 높고 쌀쌀한 기운이 느껴질 때도 곡식이 익고 열매는 탐스러워지는데 이때, 하늘이 열린다. 추운 겨울에도 하늘이 열리면 모든 더러운 것을 하얗게 덮는 백설의 세상이 된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온도에도 좋은 날씨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은총의 시간이며 하나님이 부으시는 시간이다. 우리의 삶에도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 있다. 어렵던 일이 풀리고 슬픔이 사라지는 시간일 수도 있고, 고생이 끝나고 형통한 일들이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다.

프랜시스 성자는 실제로 하늘이 열릴 때, 나무 높이까지 들려져 하나님의 신비와 만났다. 숨어 보던 제자들이 넋을 잃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하늘이 열리는 시간을 맞이했던 순간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도 종종 하늘이 열린다. 하나님의 은총과 신비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보기에 인정할만한 것이 없는 그런 사람에게도 이따금씩 그 경이로운 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여러 날 금식 중에 갑자기 모든 것이 맑아지며 온몸의 불순과 악한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는 듯한 투명함이 하늘로부터 임할 때가 있었다. 잔상처럼 남아 있던 작은 서운함이나 후회스러움조차 다 사라져 버려, 맑고 세찬 폭포수 속에 들어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습격하는 것처럼 예상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전적 주권의 일이요, 받을 수 없는 죄인이기에 은총일 수밖에 없었다. 몸의 힘은 다 빠져 나간 듯한 그 자리에 전혀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것이라면 몸이 죽고, 영이 사는 것이 맞다. 육욕과 육정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신비가 우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라면 차라리 죽기를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늘이 열리면 그냥 그대로 죽고 싶다. 다시 더러워지기가 싫은 까닭이다. 주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하늘이 열릴 때 그냥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멈추고 싶다. 주님 앞에 영원히 그대로 살고 싶다. 하지만 변화산에서 내려가자 하시던 주님 때문에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다시 또 나와야 하는 고통이 있다. 하늘이 열리는 시간은 그러므로 은총과 슬픔이 공존한다.

아! 언제나 은총만 가득한 시간이 올까. 그 시간이 영원까지 이어지는 그 날이 언제일까. 그 날을 사모한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