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걸어가신 아름다운 길

얼마 전 동광원 김금남 원장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재 중환자실에 계신데 워낙 연로하셔서(92세) 회복이 어렵다는 의사의 소견이다. 동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수도공동체로서 맨발의 성자로 불리는 이현필 선생에 의해 1943년 시작된 곳이다. 김원장님은 이현필 선생님의 제자로서 30년 가까이 동광원의 원장을 맡으며 한국교회에 맑고 깨끗한 영성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해오셨다. 무엇보다 개신교 수도자들의 어머니로서 후배 수도사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격려해주셨다. 원장님이 이 땅에 오래 사시면서 더 많은 분들에게 맑은 영성을 전해주시길 바랬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내 생각과 다른 것 같다.
사실 원장님은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분이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이제 막 꿈을 펼쳐나가려 할 때, 김금남 원장님을 만났고 그 뒤로 삶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이현필 선생님을 만난 것은 18살 처녀 때였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목사님의 설교에 만족이 되지 않았다.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나가고 싶었다. 늘 틈만 나면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주님을 찾았다. 직장생활을 했지만 속고 속이는 세상이 너무나 싫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간절히 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네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이 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고 예수님만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결단이 섰다. 그러나 원장님은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어머니를 통해 이현필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 오롯이 살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김 원장님은 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 같아 시간이 가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고 한다. 선생이 육식을 안 하니 따라서 육식을 금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걸식을 하였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지 않고 깊은 회개에 힘썼고,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치유를 체험했다. 이 선생은 남녀 문제에 철저하여 여자는 개인적으로 절대로 가까이 안하였지만, 시험에 든 제자가 있으면 이름을 적어놓고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해주었다. 이 선생은 밤마다 산에서 기도하였는데 내려올 때면 머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덮이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린 채로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노래를 불렀다.
한번은 눈보라가 치는 새벽에 이 선생이 맨발을 벗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김금남 원장은 ‘선생님께서 맨발을 벗고 가시는데 제자인 내가 어찌 신발을 신겠는가?’ 하며 맨발을 벗고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칼날을 디딘 것처럼 발이 아려왔다. 그런데 영혼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자유롭고 황홀했다. 뒷등을 밀치는 눈보라는 장망성을 어서 떠나 천성을 향해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채찍질 같았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육체는 비록 고통스러워도 영혼은 말할 수 없이 평안하고 기쁜 길이라는 것을 체험한 귀한 경험이었다.
김 원장님은 산속에서 홀로 수도한 적도 있었다. 동서남북 높은 산에 둘러싸여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새소리밖에 없는 그곳은 생소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산에 남겠다’는 마음과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다’는 마음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석 달째 되자 마음에 죄가 보이기 시작했다. 햇빛과 달빛을 보기도 부끄러워 쳐다보지도 못하고 회개의 눈물만 흘렸다. 밤에는 벼룩이 너무 많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깨어있으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벼룩보다 더 주님을 괴롭게 한 죄인임을 자복하였다.
어느덧 봄이 되어 땅에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대지를 뚫고 나온 연약한 새싹들을 보며 ‘나는 언제 옛사람의 속된 감정을 이기고 말씀에 굳게 서서 주님을 모시는 성전이 되어드릴까?’하며 탄식했다. 산열매들을 보며 ‘너는 모든 환난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오늘의 열매가 되었구나! 나는 언제나 주님의 양식이 되어드릴까?’하며 대화를 했다. 밥을 먹으려하니 쌀알 하나가 ‘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알게 모르게 수고한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오늘 밥이 되었노라’고 말을 건네 왔다.
사랑과 희생의 빚진 죄인임을 깨닫게 되자,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으로 대속해주신 은혜와 사랑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와 감격의 춤을 추었다. 달밤이면 이산 저산 다니며 초목들을 부여잡고 찬양을 불렀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김금남 원장님의 간증을 듣고 나는 주님의 길을 가게 되었다. 수도생활을 하다가 힘들고 지칠 때 원장님을 찾아가면 따뜻한 손으로 꽉 잡아주시며 “이 길 끝에는 생명이 있으니 꼭 끝까지 승리하시라”며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셨다. 비록 멀어서 자주 찾아뵙진 못했지만, 한평생 예수님만 사랑하시며 순결의 삶을 사신 원장님과 동광원 분들을 생각할 때면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정돈할 수 있었다.
이제 이 땅의 고된 삶을 마치고 주님 품에 안기실 원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김금남 원장님!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당신이 걸어가신 아름다운 길을 저도 끝까지 가길 원합니다. 천국에 가셔서도 못난 저를 위해 꼭 기도해 주세요.”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