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는 자리를 택하라

세상의 가치관은 재물, 직책, 명예와 권력, 스펙 등 눈에 보이는 것을 성공과 행복의 척도로 삼는다. 잠깐 사라질 세상의 행복을 좇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생의 전부를 걸기도 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성경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세상의 가치관에 몰두하다 보면 소유한 물질이나 일을 물려주거나 명예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 물질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주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신앙인도 많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익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계산하고 비교하며 경쟁하면서 비합리적이고 손해 보는 일은 여간해서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설적인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부자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쭈었다. “네가 생명을 얻으려면 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부자 청년은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내려놓지 못했다.

반대로 누가복음 19장의 난쟁이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서 큰 감격 속에 자발적으로 말씀을 실천했다. “주님, 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저의 재산 중 절반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예전에 소그룹 성경공부를 함께한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인생 절반이라는 시간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물질, 시간, 재능과 사랑을 쏟아부어 튼튼하게 일구어낸 충성스러운 분이었다. 재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튼튼하게 일구어 놓은 단체를 이런저런 일로 흩어버리고 화려했던 사역들을 다 내려놓게 하셨다. 그렇게 믿고 따르며 가까이하던 단원들과 주변의 지인들 모두가 등을 돌리고,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비방하는 것과 갖가지 중상모함이 들려왔다.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고, 가정도 많은 재산은 물론 집 한 칸 없이 다 거두어 가셨다.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화려했던 사역들과 큰 단체가 물거품처럼 사라지자 처음에는 몹시도 당황하였다고 한다. 단체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여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더불어 쓰리고 아픈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손해를 보게 하면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시는가? 그것은 영혼의 깊은 내면까지 정화의 작업을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 것을 움켜쥐려고 하는 속성이 강하다. 이것은 내 일, 내 단체, 내 재능, 내 재산, 내 사람 등 징글징글한 소유, 내 속에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자아의 벽과 아집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장벽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마음을 만들기 원하신다.

민수기 161-1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도중에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의 통치권에 대적하는 사건이 나온다. 광야 여정 가운데 모세를 도와 레위인의 역할을 하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여 자신들도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얻고자 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론의 죽은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셔서 모세와 아론의 통치권을 확증해주셨다.

많은 사역과 일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종으로서 더 온전히 만들기 위해 허락하시는 가장 혹독한 연단 과정 중 하나다. 내면에 아집적으로 붙잡고 있는 물욕과 명예욕 등 이러한 욕망들을 제거하고 더 영적으로 정결하고 거룩한 사역자로 만들고자 하심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 종을 내가 붙들고 쓰는 종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다.

내게도 이런 소유와 욕망이 있음을 겸손히 고백해 본다. 이제 2018년도는 이런 아픔의 과정을 다 통과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정결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정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