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영성의 길

수련원 계단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니, 원장님! 이런 건 우리가 할게요. 이리 주세요.”라며 손에 있는 빗자루를 낚아채듯이 가져가신다. “아니에요. 제가 할 일입니다.”라고 하자, 대뜸 아이고, 그러지 마시고 이리 주세요. 아프리카 다녀오셔서 여독도 안 풀리시고 아직 피곤하실 텐데 좀 쉬세요. 빨리 수실에 들어가세요.” 결국 계단만 서성거리다가 수도실로 들어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마음이 불안하고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열이 계속 났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시차 때문인지 한참을 엎드려 기도하는데, 빗자루를 빼앗기는 모습이 마음에 불이 켜진 듯 확 떠올랐다.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해외로 강의하러 간다고 빗자루를 들고 청소해야 하는 자신을 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안 하고 성결수도회 원장이라는 직책이 어느 새 점점 빗자루와 멀어지게 하고 있다.

마음이 불안하고 평안하지 않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빗자루랑 너무 멀어지고 밖으로만 뱅뱅 도는 장돌뱅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고 미련한 놈이 멸망으로 내려가는 명예의 덫에 걸려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온통 허례와 위선에 빠져 자긍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이고! 하나님, 이놈이 태생도 교만한데 교만을 점점 부풀리며 지옥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이 악한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25년 전,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 맡은 소임이 수도원 구석구석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수도자로 불러 주신 것만으로도 감격하여 무엇이나 좋사오니 주님 뜻대로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였다.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고 매우 좋아하였다. 이제는 말만 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불쌍한 왕 바리새인이요 고목이 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곧 내게 임할 것만 같다.

, 화로다. 주님이시여, 지옥 문턱에서 떨고 있는 돌팔이, 건달, 자라 수도자가 된 이 교만한 죄인을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긍휼을 베푸셔서 이 죄인을 겸손의 골짜기로 내려가게 하옵소서. 수도원 원장, 신학교 교수, 사경회 강사, 해외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죄와 먼지를 철저하게 씻어내는 일에는 게을렀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어느 왕의 자리와도 비길 수 없는 고귀한 자리, 이 빗자루가 저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마르틴 데 포레스는 페루 리마에서 스페인 귀족과 파나마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귀족인 아버지가 가정을 버렸기 때문에, 가난 속에서 컸으며 리마 사회의 하류층 생활을 했다. 그는 흑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려서부터 많은 모욕과 멸시를 받았지만, 하나님만은 자기를 사랑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천국에서는 피부의 색깔 같은 것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부자냐, 가난뱅이냐, 영리하냐, 둔하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천국에서 값어치 있는 것은 세상에서 할 일을 제대로 했고, 충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말을 실천했느냐 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았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누구의 몸 안에도 하나님을 본뜬 영혼이 있으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뜻이 아닐까? 만일 내가 사람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걸 거야!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기뻐해야 할 일인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기회가 있으니, 이 얼마나 기뻐해야 할 일인가, 그런데 이 길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극히 적으니, 이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흑인 최초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그는 그곳에서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작아지고 낮아지려 언제나 노력하였다. 사제도 노동수사도 아닌 다만 수도원의 심부름꾼이 되려고 생각했다. 수도사가 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에게 너무 큰 영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에게서는 빗자루가 늘 떠나지 않았다. 수도원 곳곳을 다니며 쓸고 닦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 또한 자신이 태어난 것은 주님께 자신을 바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주님은 그 자신을 나에게 내주셨다. 나도 나 자신을 주님께 바치리라.” 한번은 수도원이 경제적으로 매우 곤경에 처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련한 혼혈아일 뿐입니다. 나를 파시오. 나는 수도원의 재산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병든 인디언과 아주 더러운 거지를 방에 데려온 것을 보고, 한 수도자가 비난하고 불순종에 대하여 꾸짖었다. 그의 비난을 조용히 받아들인 후 순종이 자비보다 앞서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자비심이 깨끗함보다 더욱 훌륭하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날은 성격이 괴팍한 노 수도사가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느리게 행동한다며 그를 책망하면서 이 검은 똥강아지!”라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 저는 검은 똥강아지입니다. 그 말씀도 제게는 과분합니다.” 가장 쓰라린 모욕까지도 감내하였던 그는 거짓됨이 없이 참으로 겸손하셨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늘 고백하셨다.

환우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힘에 지나도록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으로 섬겼다. 자신이 지닌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죄인들의 구원과 회개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타인의 잘못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간구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였다.

그의 낮아짐은 들짐승들이나 부엌의 벌레들에까지도 미쳤다. 마당에 쥐나 생쥐가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다고 그랬고, 자기 여동생의 집에서는 길 잃은 개와 고양이들까지 보호하기도 했다. 하나님과 일치를 잃지 않으면서 힘들고 보잘 것 없는 일,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 아무리 해도 별로 표시도 안 나는 일들을 말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기쁘게 감당하였다. 그저 하나님의 도구로 감사할 뿐이었다.

주님! 저도 지친 사람, 병든 사람, 불행한 사람을 제가 돕도록 해주세요. 주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저를 도구로 쓰셔서 그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병원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활을 놀라운 선물로 채워주셨다. 그를 공중에 들어 올리는 탈혼 상태, 그가 기도하는 방을 가득 채우는 빛,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것, 놀라운 지식과 지혜, 순간적인 병의 완쾌, 동물들을 뛰어나게 다루는 솜씨 등이 그것이다. 그의 사상과 가치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불타는 사랑과 봉사이다. 성 마르틴 수사님처럼 어떻게 하면 더 작아지고 더 낮아질까. 흔들리는 몸을 부여잡고 다시 간절히 기도드려본다.

주님, 수도회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옵소서. 빗자루를 들고 수도원 곳곳을 기쁨으로 쓸고 닦으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기억조차도 하지 않는 빗자루 수도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남을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학생으로 내려가게 하옵소서. 이름 모를 들꽃처럼 겸손의 향기를 머금고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 사라지게 하옵소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직책에 얽매이지 않게 하소서. 날마다 수도원 뜰 안을 쓸고 닦듯, 제 마음도 쓸고 닦으며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빗자루 수도자로 살다 순교하게 하옵소서.”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