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리는 순종
평생 예수님만 사랑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주님 품에 안긴 젬마 갈가니(이탈리아, 1878-1903).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그녀 가까이에는 이별, 질병, 고통, 슬픔만이 점철된 듯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임에도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십자가를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누구보다도 열렬히 주님을 사모했다. 그런 간절함의 응답인지 예수님의 십자가 오상을 받는 특은을 체험한다(1899). 뿐만 아니라 채찍의 아픔, 주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의 아픔 . 예수님이 느낀 성흔(聖痕) 고통을 똑같이 받아 견딜 만큼 그녀는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다. ‘보석’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그녀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였으며, 하늘의 사람이었다
젬마는 8살에 폐결핵 걸린 어머니를 여의고, 9살에는 오빠와 사별을 했다. 19 되던 해에는 아버지마저 인후암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재산을 모조리 차압당하고 친척들이 보내는 약간의 생활비로 동생들과 연명하며 지냈다. 이러한 연이은 고통 가운데서도 예배 때마다 성녀와도 같이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의 젬마를 지아니니 부인은 눈여겨보았다. 그녀의 품행에 감동을 받은 부인은 자신의 집에서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젬마도 초대에 승낙하여 지아니니 가족의 일원으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입주할 하인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왔지만 주인을 대하듯 항상 순종 하였다. 심지어 집의 하인에게까지 순종적이었다. 한번은 성미가 괴팍한 하인이 다리에 종기가 나서 심하게 앓게 되었다. 젬마는 병든 하녀의 온갖 시중을 불평 한마디 없이 들어 주었다. 그러나 평소에 그녀를 고깝게 여겨온 하인은 감사인사는커녕 오히려 무시하고 나가버리라고 했다. 이러한 천대를 받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으로 순종하며 하인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였다.
어느 여느 때와 같이 체칠리아 부인은 아침 예배를 드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젬마를 불렀다. 당시 자주 관상기도로 탈혼(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하나님과 영적 대화를 하는 초자연적 현상) 했던 젬마는 그날도 역시 황홀경에 빠져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체칠리아 부인은 속으로 ‘주님께 합당하시거든 정신을 차리도록 허락해주소서.’라고 기도드렸더니 곧바로 젬마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자는 부인의 눈짓에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순종했다
젬마의 생애를 읽으면서 마음속에 거듭 울리는 단어는 ‘순종’이었다. 젬마의 순종이 너무나 고귀해 보였다. 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은 고사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순종했을 만무한 나의 지난날들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순종은 토를 달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명하시면 즉시 행할 뿐이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머리로 먼저 이해되지 않으면 행동하기 어려워하는 나는 이제껏 ‘순종’이라는 마음을 많이 품지 못한 듯하다. 경우에 맞지 않는 상황이 생기거나 일이 비효율적이거나 비합리적이다 싶으면 그것을 바로잡아야만 직성이 풀리었다. 이렇듯 묻고 따지기 좋아하는 성품이기에 누구보다도 내게는 순종의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때로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듯해도 결국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 순종은 빛을 발한다. 순종에는 ‘나’가 들어가지 않는다. 나의 ,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 나를 버려야만 순종할 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렇게 바보 같은 일도 없다. 그러나 나의 자주적 행사를 완전히 포기하는, 의지를 처절히 굴복시키는 번의 순종은 천국에서 영원히 가치 있는 공력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 성화된 성도들은 한결같이 순종으로 자신을 주님 앞에 복종시켰고, 겸손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분들이었다. 젬마가 그토록 아름다운 나이에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가 있었던 비결은 바로 순종이리라.

한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