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얼마 전 황수관 박사는 한 텔레비전 쇼에서 “이별”이란 주제로 짧은 특강을 하고 아쉽게도 급히 하늘로 떠났다. 그 특강은 짧고 강렬했다.

영국문화협회의 세계 102개 비영어권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말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칠판에 적어갔다. 첫째는 “Mother”였고, 두 번째는 “Passion”, 세 번째는 “Smile”, 네 번째는 “Love” 였다. 놀라운 것은 70번째에도 “Father” 은 없었다며, 홍역에 걸려 죽게 된 자신을 산에 묻으러 가자는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가 혀로 발진이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핥으며 기도하셨던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많이 하라고 하며 마쳤다. 다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과 희생은 누가 주신 것인가? 동물들도 모성애를 갖고 있다. 어떤 경우엔 그 모성애가 사람보다 더 특별하다. 연어는 알을 낳기까지 몸이 터지고 다른 동물들에게 먹힐 것을 각오하고 모천으로 올라가 산란하고 지쳐 죽는다. 결국 어미의 몸은 새끼들의 영양분이 된다. 호주의 군거거미는 살아 있는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주어 피를 빨리고 죽어간다. 말라죽은 시체조차 새끼들의 겨울철 양식이 된다. 사람보다 더 특별한 이들의 모성애는 누가 주신 것인가?

이는 학습으로 될 수 없는 본능에 속한 것이다. 누가 그 본능들을 주었는가? 그렇다! 이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번식을 위해 주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인 “어머니”의 모성애도 마찬가지다.

그 모성애, 그 사랑과 희생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세상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희생제물 삼으신 사랑이요, 그 사랑의 요구에 기꺼이 자신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그러므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다. 이는 자기 자식을 위해 죽는 동물의 모성애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롬5:6,8) 못과 창에 찔리고 피를 다 흘려 죽으신 거룩한 희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고 하신 그 살과 피를 주신 것이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모성애를 넘어서는 위대한 사랑을 주시고, 실제로 그렇게 죽어 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보며 눈물 흘릴 순간들이다.

몹쓸 죄와 악한 정욕적 삶으로 인해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회개하자. 복음으로 낳은 우리를 살리려 먹이가 되어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탐욕과 불순한 애정 앞에 오열하자. 철저한 참회하자.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