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온을 뜨겁게 하라

우리 주님께 애절한 소원이 있었다. 세계가 활활 불탔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12:49). 불이란 말 자체가 힘차다. 밝고 뜨거운 것이 불의 특징이다.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 주시는 분(3:11)이라 했다. 소멸하는 불이 되어 세상의 죄를 말끔히 태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슴 속마다 뜨거워지기를 소원하셨다. 그래서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선포하셨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불은 던져졌는데 그 불이 번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타지 않고, 연기만 피어올라 사람을 괴롭게 하는 물먹은 장작과 같다. 아예 불 꺼진 까만 숯덩이가 되었다. 조금도 무섭지도 밝지도 않은 반딧불이 되었다. 기독교인만의 그 독특한 매운 맛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는 속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주님께 드렸다.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여 주님의 입에서 뱉어질 미적지근한 피곤한 교회가 되었다.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마귀 자녀인지 하나님의 자녀인지 도무지 구별이 안 된다. 십자가의 군병인가 하여 손뼉 쳤더니 어느덧 머리 깎여 맥 빠진 삼손이 되었다. 기백이 없다. 삼각산을 밀어버릴 듯한 기세로 사자처럼 부르짖던 그 기도 소리가 고양이 소리로 바뀌었다. 이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생각인가?

이 틈을 타서 마귀는 총공세를 편다. 우상 숭배와 미신을 범람시켜 오늘의 운세가 세계 신문의 흥밋거리다. 인권이란 명분으로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이혼율이 세 쌍 중 한 쌍으로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빠 실종세계가 되었다. 인간과 짐승의 복제 현상까지 일어날지 모르는 질서 파괴의 세계가 되어간다. 세계 곰 밀렵의 90퍼센트가 한국인의 소행으로 야만인 취급을 받는 망신을 당하면서 제 몸 하나 살찌우기에 혼이 빠졌다. 세계구원, 이웃사랑, 충성과 성결의 삶, 성령 충만은 몇몇 사람의 전유물이 되었다. 북한은 남한을 초토화할 5천 톤의 화학무기를 준비해 놓고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데, 남한은 사치와 허영과 허세가 교회까지 침투했다. 마귀의 불을 받아 악령의 체온으로 온도가 유지되는 것 같아 한심하고 처량하다.

옛날 전쟁에서 화전(火箭)이라는 게 있었다. 화살 끝에 불을 붙여 성 안으로 쏘아 적의 성을 불 지르는 화공전법이다. 어떤 사람은 성을 공격할 때 소 500마리 꼬리에 기름과 불을 붙여 적군과 적의 성 쪽으로 쫓았다. 뜨거움에 못 견딘 황소들은 맹진하여 그 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쉽사리 성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삼손이 풀어놓은 불 붙은 300마리 여우가 블레셋 들판을 불밭 되게 한 이치다.

성령의 불이 예레미야의 가슴에 붙었을 때 중심이 불 붙은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20:9) 견딜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을 소낙비같이 쏟으며 조국을 위해 울부짖었다. 다락방에 떨어진 불은 용광로처럼 되어 성령시대를 개막시켰고, 기독교 2천 년 역사에 활화산이 되었다. 핍박자 사울의 강퍅한 마음에 번진 불은 생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당시 세계를 두 발로 거의 밟아 세계 선교사의 조상이 되었다. 하늘 불을 몇 번이나 땅에 떨어뜨린 엘리야의 기도, 돌처럼 굳어진 형식적인 유대 종교를 향해 간담을 서늘케 한 세례 요한의 원자탄과 같은 위력적인 외침은 그 시대를 뒤흔들어 놓았다. 로마로 건너간 성령의 불은 세계 최대 강국 로마제국의 밑기둥을 부러뜨리고 기독교 1500년 역사를 지속케 했다. 세계 도처에 조각불이 번져 선교사가 벌떼처럼 일어나 성화 봉송주자가 되어 귀신들을 놀라게 했다.

21세기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선교사들이여! 성직자들이여! 한국의 크리스천들이여! 불 받아라! 성령불 받고 나가라! 가슴이 뜨거워져라! 교회에서는 주여, 주여!” 하다가도 교회 문 밖으로 나가면 나요, 나요!” 하는 혈육을 녹여라. 성령 충만 받지 못하면 성질 충만 받는다는 말이 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시험 받는다. 자기의 신앙체온을 뜨겁게 하라. 그리고 세계를 불 지르라. 주님을 답답케 한 긴긴 세월을 청산하라. “네 설교에 불을 붙이라. 그렇지 아니하려거든 네 설교를 불 속에 집어던져라.”는 웨슬레의 말은 간절한 충고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