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천국
7년 전 봄날에 들었던 강의를 아직 기억한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삶으로 그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으셨다는 한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흙집에서 냉장고, 세탁기도 없이 낮이면 햇빛에 의지하고 밤에는 촛불을 밝히며 살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었다. ‘가난이 참 복이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가난하게 살아야겠구나!’라는 감동과 함께 그분들이 누리고 있는 천국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당시 공동체에서 지원받는 활동비의 절반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한 달을 살았지만 돈이 남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가끔 보험사에서 전화가 와서 이제 고객님도 보험에 들 나이라고 재촉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신앙양심상 보험을 들지 않습니다.”라고 응답했다. 보험사 직원은, 자신도 교인인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며 사고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실 거냐며 훈계를 시작한다. 그래도 나는 믿음을 주장하며 전화를 끊곤 했다.
어설프지만 가난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나의 작은 몸부림에 하나님은 많은 선물을 주셨다. 봉사를 해도 마음에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봉사를 하는 기쁨이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누가 갖다 주기도 하고, 뭐가 필요하다 싶으면 곧 생기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누리는 자유와 행복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신령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삶에 이런 간증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몸이 이곳저곳 아픈 일이 생기니 덜컥 겁이나 실비 보험부터 들고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봉사를 하면 은근히 수고비를 기다리고, 적게 주면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했다. 행여 누가 공짜 돈이라도 주면 미소를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가난의 형제인 겸손도 도망간 지 오래된 듯하다. 마음도 몸도 부유해진 내게 주님은 회개를 재촉하셨다.
수십 년 전 일본에서 교토에 「일등원一燈園」이라는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의 중심인물은 니시다 덴꼬라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산다」는 삶의 철칙을 세우고 말뿐인 기독교, 돈으로 운영하는 기독교를 거부했다. 그의 생활은 일명 참회탁발(慙悔托鉢)의 생활이다. 그는 무슨 초청을 받거나 강연을 하러 가서도 옆구리에 수건을 꺼내어 머리에 쓰고 그 집의 가장 천한 일, 화장실 청소, 설거지 등을 자원해 하면서 일 삯은 받지 않았다. 그저 초라한 밥상을 받고 처마 밑 구석에서 잠자리를 대접받고는 황송해했다. 쉬는 시간에는 햇볕이 따사로이 쬐는 양지에서 성경을 읽으며 기쁨에 취했다.
일등원의 운동이 일어났던 초기에는 사람들이 코웃음을 치고 멸시했다. 그러나 점점 사회의 주목을 끌게 되고 국가에서 인준해주고 후원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회봉사의 탁발생활에 참여함으로 사회는 밝아지고 치유되었다. 니시다 덴꼬는 이렇게 말했다. “일등원의 생활을 하면 돈을 쓰고 싶지 않게 됩니다. 참회탁발 봉사의 생활을 하면 자기를 내던지는 자기희생의 삶의 즐거움이 용솟음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으면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를 진정 깨닫게 되면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집니다.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고마워지기 때문에 돈 같은 것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참회봉사의 자리가 바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전도하는데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든가 교회 사업에는 지혜와 수단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따위의 소리는 진정한 기독교정신일수가 없습니다. 인간적 수단이나 지혜를 가지고는 내가 지금 간증하는 이 같은 감격스러운 일을 도무지 해낼 수가 없습니다. 모든 빛다운 선한 것은 빛 되신 하나님의 손 안에만 있습니다. 
노동을 하고 난 뒤 당연히 보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는 노동은 탁발도 봉사도 아닙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은 삯군이요, 주고받는 흥정이요, 영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탁발은 내 편에서 먼저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를 철저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위탁받은 몸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내가 장차 뭇사람을 위해 헌신해 살려할 때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를 염려하는 것은 내가 할 몫이 아닙니다. 그런 걱정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내가 할 몫은 나를 버리는 일입니다. 탁발을 나가면 이전에 이기적인 생각으로 일을 시켜달라던 때와는 하늘과 땅처럼 변화됩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진실한 겸손과 경건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하루 이틀쯤 먹지 못하거나 노숙을 하게 되어도 그것이 도리어 좋은 수업의 기회가 됩니다.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진다면 언제나 하나님의 눈에 들고 보호를 받습니다.”
대가를 바라는 봉사 아닌 봉사를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참 부끄럽다. 있는 소유를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나라에서 준다는 재난기본소득은 신청하지 않기로 하였다. 어디에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고통을 더하는 일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등원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며 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참회봉사의 생활을 찾으며 나의 삶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순수한 헌신이 되도록 해야겠다. 가난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천국을 되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