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출발
어린 시절 혼자 즐기던 놀이가 있었다. 태양을 향해 눈을 감으면 보이는 전구의 필라멘트 같은 것을 이리저리로 움직이며 즐거워했고, 돋보기 장난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재미난 놀이였다. 태양빛이 모아져 종이가 타버리는 것은 아무리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손바닥에 초점을 맞춰 기겁을 하면서도 그 장난은 끊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었다. 왜 그리 좋아했는지… 아마도 강렬한 빛, 열정, 집중, 이런 상황이 좋았던 것 같다.
선한 분명한 목표를 향한 집중된 지향은 생을 빛나고 강렬하게 한다. 그 목표가 조물주 하나님과 맞닿은 것이라면 바로 거기에서 거룩한 불꽃이 이는 것이다.
달인들의 공통점은 수만 번의 끊임없는 도전과 셀 수 없는 실패 속에도 결단코 포기하지 않음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은 타고난 천재라고 자신과 구분한다. 명곡 “지고이네르바이젠”을 작곡한 사라사데는 파가니니와 함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되며 그의 천재성이 주목되었다. 하지만 수없는 실수와 좌절을 거쳤던 그는 조용히 말했다. “37년간 거의 빼먹지 않고 하루 14시간씩 연습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 한다.” 농구의 전설인 마이클 조던을 만든 것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실패였다. 그는 9천 번의 슛을 미스했고 300번의 경기에서 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가 뺏을 수 없는 목표에 대한 집중이 그를 만들었다. 손흥민이나 류현진이 실패한 볼들은 도대체 몇 만개일까. 사실 우리는 모두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란 정말 보잘 것 없는 실패의 연속이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가 확실한 삶은 확실한 불꽃이 튄다.
그러나 생의 거룩한 점화는 선한 목표에 집중할 때 일어난다. 거룩한 목표에 대한 집요한 몰입, 실패를 뚫는 집중된 도전이 뜨거운 불을 일으킨다. 이 새해에 우리는 무슨 선한 목표가 있는가. 불을 낼 무슨 빛나는 목표가 있는가. 생을 걸 만한, 그것이 전반전이든 후반전이든 간에 미칠 듯이 몰입할 무슨 목표가 있을까.
사도 바울은 생의 끝에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선한 목표를 향해 얼마나 질주한 생애였는지, 사랑을 획득한 자의 행복이 가득하다. 이글이글 타는 불이 그의 삶이었다. 이런 목표가 있고, 이를 위해 젊음이든 노후이든 바치려는 이들은 밤바다의 등대가 되고 표적을 뚫는 힘찬 화살이 된다. 기러기 떼가 눈부신 이유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멈추지 않는 힘찬 비행에 있다. 혹 넘어졌는가. 넘어져야 또 일어서는 감격을 맛보지 않는가. 인격적 실패로 참담한가. 그래야 겸손을 익히고 도우시는 주님을 붙들지 않겠는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한 시선이요, 포기하지 않는 발걸음이다. 실패는 성공을 확신케 하는 사인일 뿐이다. 이 새해에 선한 목표를 향해 새롭게 또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