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를 섬기리라

지난 번, 아홉 번째 날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는 2차 대전 중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한 신부가 일기를 써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다하우 수용소. 유태인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각국 종교인들을 체포해 강제 수용하는 곳이다. 영화는 나치의 한 장교가 노래박자를 제대로 못 맞춘다며 한 사제의 머리를 쇠꼬챙이로 수차례 잔인하게 내리치는 장면부터 시작됐다. 사제들만을 따로 모아놓은 수용소 한켠에서 나치는 이들이 신앙심을 버리고 나치에 복종하도록 끊임없이 훈육한다. 룩셈부르크 출신 헨리 크레머 사제 역시 나치의 인종차별법에 반대하는 논문을 쓰고, 반나치 운동을 하다 체포돼 이곳에 끌려왔다.

그는 끝없이 자행되는 고문과 모욕, 폭력과 죽음 속에서도 종교적 양심과 신념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호출을 받고 십자가가 있는 처형장으로 걸어가는데 뜻밖에 석방이 된다. 그는 그 이유를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알게 된다. 게슈타포 게하르트는 그에게 룩셈부르크 대주교가 나치에 협력하도록 회유하라고 명령한다. 주어진 시간은 9. 실패하면 다시 죽음의 수용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물론 동료사제들의 목숨까지도 위험하다. 거부하기 힘든 유혹과 싸우며 양심에 따라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그의 고뇌와 수용소의 고통들이 하루하루 펼쳐진다. ‘아홉째 날이란 크레머에게 유다가 되라며 나치가 내준 9일간의 고통스런 시간이다.

영화는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셈하며 마지막 날까지 번민하고 고뇌해가는 크레머의 행적을 따라간다. 그에게 밀려드는 죄책감 혹은 달콤한 배반이거나 공포스런 협박으로서의 제안들이 그의 심리적 고민들을 가중시킨다. 그런 그에게 룩셈부르크 대주교는 신념을 지키라고 당부하지만, 한때 가톨릭 신학생이었던 게하르트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신학적 논쟁을 벌이고, 설득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위협을 가한다. 아홉째 날이 되기 전에 믿음을 부정할 것인가. 혹은 나치에 룩셈부르크를 파는 유다가 될 것인가. 그는 가장 고통스런 선택 앞에서도 가장 떳떳한 선택을 한다. 협조문 대신 흰 백지를 제출하고, 다시 수용소로 돌아간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당시 나치 치하에서 감옥이나 수용소에 있는 사제나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나치와 외교적 타협을 하였다.

우리에게도 크레머에게 주어진 아홉째 날처럼 순수한 믿음을 지킬 것인가? 혹은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의 길을 걸을 것인가.”라는 선택의 시간이 주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좀더 편하고 덜 고통스런 시간을 가지려고 쉽게 타협하기도 하고, 이웃과의 갈등과 번뇌의 시간이 괴로워 단번에 무언가를 결정해버리기도 한다. 혹은 자신보다 더 막강한 세력으로부터 은근한 압박이나 힘이 가해지면 그 위협에 못 이겨 신앙의 양심을 저버리기도 한다. 때론 이웃 간의 화합이라는 선한 명분에 가려져 하나님보다 사람 중심으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그럴싸한 논리와 이치에 현혹되어 의심하거나 흔들릴 때도 있다.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느껴도 큰 소용돌이 속에 함께 휘말리고 싶지 않은 이기심에 방관자가 될 때도 있다. 또는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신앙의 굳은 의지를 헐값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정과 욕심에 눈이 가리워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일제 식민지, 1938년의 일이다.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일본의 천왕을 섬기는 것은 신앙과 상관없는 일종의 국민의례이니 신사참배를 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주기철 목사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면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나섰다. 일본 경찰들은 주 목사의 굳은 의지를 꺾으려고 그와 성도들을 감옥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하겠다고 하면 주 목사가 더 이상 고문을 받지 않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들 앞에는 널빤지에 못을 무수히 박아 놓고 못판 위를 걷게 하는 고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대로 신사참배 반대를 계속 고집한다면 못판 위로 걷는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과 협박을 하였다.

그때 주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도 여러분, 나 주기철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오직 주님 앞에서 여러분이 함께 다짐한 것을 끝까지 굳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마치고 자진해서 못이 무수히 박힌 널빤지 위로 올라갔다. 못판 위를 걸을 때마다 붉은 피가 얼룩졌다. 성도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라는 찬양을 불렀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을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각오와 다짐과 정절을 지켜 나갑시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순수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향한 인간적인 자애심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진리가 앞서야 한다. 이 땅에서 누릴 잠시잠깐의 안락과 평안,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보다 하늘을 소망한 이들은 신앙의 정절을 목숨처럼 지켰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오타 줄리아는 미모와 재기가 뛰어나 일본 최고의 권력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첩이 될 것을 그녀에게 요청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네가 나의 첩으로 들어오면 감옥에 갇힌 크리스천들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기독교를 불법종교에서 제외시켜 주겠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삼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하였다. 그 시간동안 자신의 순결을 선택할까? 모든 기독교인의 자유를 선택할까?’ 하는 마음의 갈등이 일었다.

그러나 묵상 중 신앙의 정절과 순결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다만 그를 섬기리라.’는 결단을 하며 그의 수청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분개한 이에야스는 당장 오오시마로 유배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배를 타기 위해 부두로 가는 길에도 주님을 떠올리며 자청하여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갔다. 여기저기 날카로운 돌부리에 찢기어 걷는 곳마다 피가 낭자하게 흘러 내렸다. 후에도 세 번이나 유배 처분을 받은 뒤 죄를 사면해주는 조건으로 이에야스의 수청을 제의를 받았으나 다시 거절하였고, 고즈 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우리는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도 내가 선 그 자리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안위나 명예나 이익을 좇다가 혹은 상대방의 위압에 눌려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적당히 신앙의 타협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오해와 수모와 고통을 겪게 될지라도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주님이 원하시는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의 수많은 부귀와 명예를 다 준다 해도, 우리의 절실한 요구를 즉각 들어준다고 해도, 그것이 설령 많은 사람들이 옳게 여기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순수한 신앙을 저버리는 일이라면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에도 아홉 번째 날과 같은 갈등과 번민과 의심의 시간이 시시각각 주어질 것이다. 곧 불어 닥칠 전무후무한 대환난 때에도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유혹과 핍박 앞에서 절체절명의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날에 다만 그를 섬기리라.”는 단호한 고백이 우리 안에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