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소년 폭행사건이 부산 여중생 집단폭력사건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터지면서 연일 시끄러웠다. 잔인한 방법으로 친구를 폭행하는 청소년들의 모습과 태도를 보며 안타까움과 놀라움, 분노와 탄식이 일었다. 이러한 사건들의 내재된 근본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며 상황이다.

우리의 현실

도처에서 기성세대들의 무관심과 부모의 일방적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청소년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PC방을 전전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홀로서기를 힘겹게 하고 있지만 그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가정과 사회의 외면 속에서 심한 고독과 좌절감에 떨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핵가족화, 산업화로 결손가정이 많아지면서 방황하는 청소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입시와 시험의 중압감에 시달리고 인성교육의 기회도 적다보니, 문제해결 능력도 폭력적이고 즉흥적이 되었다.

피해 학생들도 대인공포증이나 우울증을 나타내 올바른 인성을 갖지 못하는 게 심각한 학교폭력의 병폐이다. 교육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의 뿌리는 가정폭력과 가정교육의 부실화, 맞벌이부부 및 결손가정 증가, 폭력을 학습시키는 억압적 사회구조,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을 뿌리 뽑는 데는 학교 및 교사의 노력뿐 아니라 부모의 관심과 올바른 자녀교육, 청소년 문화 공간 확충, 가해 및 피해학생을 선도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

청소년들은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과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환경이 주어지면 잘못된 습관이나 폭력성이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과 다수가 아닌 소수의 홈그룹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해 학생들에게 처벌은 엄중히 해야 하지만 치유와 선도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만 제2, 3의 폭력의 재생산을 막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척결이니 근절이니 하는 구호보다 범시민적으로 학교주변의 유해업소와 폭력 만화·게임·음란비디오 등 비교육적 환경을 없애는 자정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우리 어른들이 바로 서지 않으면서 어찌 아이들을 탓하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해

최근 부산지방법원의 부장판사인 천종호 판사님이 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해란 책을 보면, 소년재판을 하시면서 만난 아이들과 재판 후 이야기, 사법형 그룹홈인 청소년 회복센터의 개관과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 아이들이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친구들을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폭행하는 등의 죄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재판과정에서 천종호 판사는 아이들을 호되게 야단을 치고 그 부모와 교사들의 무책임함에도 호통을 친다. 그 모습에 신선한 청량감이 느껴지면서 아직 이 사회에 청소년들을 호통칠 수 있는 어른이 있음에 감사했다.

그는 아이들의 문제가 사실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하면서 아버지들이 가정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욕하며 싸우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버젓이 흡연과 음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들이 자주 접하는 TV·영화·게임은 불륜이나 폭력을 조장하는 내용들이 많지 않은가. 이런 영향을 받은 가난·결손·이해관계가 깨어진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가출, 절도, 폭력, 약자에 대한 왕따 등의 일탈행위를 하게 된다. 사랑받고 꿈을 꾸기에도 모자란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고 재판자리까지 오게 된 안타까운 여러 사연들이 나온다. 그 아이들이 치유되어 다시 밝게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이다.

청소년들의 일탈은 나는 사랑 받고 싶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겉모습만 보고 일방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천종호 판사도 자신이 경험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그 비행청소년들만 문제가 아니라, 이를 방치하고 무관심한 기성세대들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미안하다는 양심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나설 때

비행청소년들을 욕하고 매도하는 것은 쉽지만, 그들이 정상적인 자리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정치권이나 교육·사회권은 이런 일에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처벌이나 성과위주의 대책만 내고 있어 안타깝다.

아직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교회가 앞장서서 우리를 낮은 자리에서 섬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청소년 회복센터를 지원하고 봉사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 믿는다. 벼랑 끝에 선 청소년들을 잘 돌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의 친구들이자 함께 한 땅에서 살아갈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또래의 집단폭력과 왕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평생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교회가 나서야 한다.

이탈리아의 사제이며 청소년 교육가였던 돈보스코의 사역과 가치관을 보면 우리가 본받을 점들이 너무 많다. 그는 신앙교육과 더불어 일자리를 위한 기술교육을 하면서 청소년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고, ‘오라토리오라 부르는 기숙사를 세워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의식주를 마련해 주었는데,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한결같이 돈보스코는 나를 특별히 더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돈보스코에게 아이들의 문제는 바로 자신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 젊은이가 문제가 있어 돈보스코에게 다가오면 그 문제는 곧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돈보스코와 함께하기를 열망했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돈보스코는 아이들이 사랑 받고 있음을 알게 하면서 자신도 사랑 받는 그런 상호적인 관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교육학을 젊은이들 안에 실현해 나갈 수 있었다. 피상적인 지식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진실한 사랑이 우선이다. 그들을 영혼으로 끌어안고 진실로 사랑하고 섬길 때, 그들은 진심을 알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라던 돈보스코의 진실한 사랑과 열정이 우리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 넘쳐서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젊은 사역자들이 이 땅을 환하게 비추길 소망한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