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로 향기 내는 삶

딸아이가 지난 설 연휴에 어느 의료 선교팀과 함께 방글라데시에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시골풍경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자라던 시골 동네의 풍경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는 기독교인이 1%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9%가 넘는 사람들이 모두 이슬람교인 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선교하는 것은 정말로 목숨을 내놓고 선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딸아이와 나누면서 우리가 여기서 마음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요 감사한 일인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와 담임 전도사님이 생각이 나고 그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자란 곳은 충청도 시골입니다. 시골 면소재지 상가 건물 이층에 젊은 전도사님 내외분이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그 동네에 처음으로 교회가 들어온 것이지요. 제가 자란 동네는 온갖 잡신들과 귀신을 섬기는 무당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마을 어느 집에서든지 푸닥거리가 자주 있었고, 또한 충청도 양반들이라서 유난히도 유교적인 관습 속에서 제사를 지내며 가을에는 또 여러 가지 굿이나 귀신을 섬기는 행사들도 많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한 동네에 교회가 세워졌으니 담임 전도사님께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어느 날은 교회 마당에 똥을 뿌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예배시간에 소란을 피우며 방해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에게는 딸이 셋이 있었는데 아이들조차도 학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전도사님은 흔들리지 않으시고 주일 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청년들을 꾸준히 양육하셨습니다.

글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도시에서 편지가 와도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부탁으로 편지도 읽어드리고 답장도 대신 써 드렸습니다. 글을 모르시는 분들을 대신하여 행정적인 일까지 대신 해드리면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병이 나거나 힘든 가정에는 무당집이라도 가셔서 기도해드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는 동네 모든 분들이 전도사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쉽게 부흥되지 않아 여전히 끼니를 거르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전도사님 댁에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어른들은 교회에 나가시지 않으시는 불신자들도 추수 때에는 먹을 것을 나누어서 교회로 가져갔습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전도사님의 도움을 다 받으신 분들이며 그분의 인격에 감동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도 서서히 부흥이 되고 마을에 유지되시는 분들과 교회에 청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10여년이 지나 교회가 새롭게 건축하고 부흥이 되었는데 그 전도사님은 그 때에 교회를 사임하시고 다시 어느 산골의 개척교회로 들어 가셨습니다. 그 전도사님께서 교회를 사임하시고 떠나시던 날은 온 동네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분을 배웅하며 아쉬움을 나누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분의 아름다운 섬김과 성실하심은 제 기억 속에서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그 전도사님께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으시고 끝까지 전도사님으로 계셨던 이유도 본인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셔서 스스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으셨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동네에는 여러 교단에서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마도 그분의 헌신과 봉사의 밑거름이 그 동네를 복되게 하고 풍요로운 마을로 만들었으리라고 봅니다.

방글라데시의 풍경이 수십 년 전의 제 고향과 비슷하다고 느끼면서 그 곳에도 그 전도사님과 같으신 주님의 일꾼들이 가서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복음이 전해질 것 같습니다.

아직도 복음을 전해 받지 못하고 참 소망과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살다가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나 공산권이나, 이슬람 문화권의 많은 영혼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고 진리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기에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주님의 유언이요 명령이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요 주님의 빛된 향기를 풍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알기에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땅에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권능을 받아 그런 오지에 선교사로 나가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많은 일꾼들이 나오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임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