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그분의 뜻이다

새해가 되면 계획과 목표 세우기에 바쁘다. 목표를 세우고 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열정이 솟아나기에 우리의 계획은 올해도 거창하다. 그러나 내가 세운 계획은 때로 하나님의 계획과 다르거나 앞서갈 때가 많아 오히려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러해야 한다는 나의 욕심이 하루의 삶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 하나님의 마음을 놓쳐버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세운 계획 속에 있지 않고 눈앞에 허락하신 환경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한 젊은이는 고향과 가족을 하직하고 러시아 선교에 자원했다.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성직자가 되고나서 보니 러시아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가 막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 대신 폴란드 앨버틴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다. 10여년 뒤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는 전쟁이 발발하여 폴란드 난민의 틈에 섞여 러시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길 잃은 양들의 목자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노동자로 가장하여 입국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낙담하기에 충분했다. 사람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드는 육체노동, 초라한 주거지와 불가능한 사생활, 뼈를 깎는 듯한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선교활동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날이 갈수록 선명하게 다가오자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종교의 자유는 소련 헌법에 보장되고 있었지만 권면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러시아에 들어올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처음엔 어려워도 영향력이 점점 커지다보면 신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와서 보니 종교 이야기는 꺼낼 수조차 없으며 자신이 성직자라는 말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다. 점점 우울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뇌는 깊어져만 갔다. 결국 다시 폴란드로 돌아갈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가 선교를 결단했던 것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한 것이기에 하나님도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이었다. 이곳에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유혹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바라던 것, 상상하던 것, 이래야만 된다고 생각하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마음에 담고 계시며 우리에게 마련하신 그 상황 속에서 날마다 드러내 보여주시던 그것이었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뜻은 매일 매순간 주어진다. 하나님이 그 당시 우리 앞에 펼쳐 놓으신 사람들과 장소들, 주변 환경들이 바로 그 순간에당신과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사실들을 알고 계셨다. 우리의 추상적인 관념이나 주관적인 열망에서가 아니라 매일의 삶을 토대로 행동해주기를 바라셨다. 그렇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야말로 그분의 뜻 그것이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뜻은 하루의 모든 상황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며, 모든 사실을 그분이 바라보시고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그대로 관망하는 법을 터득하기만 하면 된다.

유혹은 하나님의 뜻은 이러해야 한다.’는 우리의 관념에 어울리는 보다 고상한 다른 어떤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데 있다. 지극히 단조롭고 일상적이며 판에 박힌 우리의 생활환경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그날그날 부여되는 하나님의 뜻은 그 속에 깃들어 있다.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단순한 이 진리를 유일한 원칙으로 삼을 때 우리는 마침내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느끼게 된다. 또 우리 존재의 유일한 목적이자 창조의 이유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매사에 스스로 노력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이 진리를 고백했을 때 지루하고 답답한 독방은 작은 수도원으로 변해 있었다. 아침에 잠이 깨면 곧바로 아침기도를 드렸다. 화장실로 가서 변기를 씻는 아침일과를 끝내고 꼬박 한 시간을 묵상으로 보냈다. 밖에서 들려오는 시계 종탑소리에 맞추어 아침, , 저녁 기도를 바쳤다. 겨우 기억해낸 짧은 성가를 반복해서 부를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원하던 선교활동을 활발히 할 수 없었지만, 곁에 있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다시 책상에 앉아 빼곡하게 써놓았던 신년 계획표를 지웠다. 그리고 단 한 문장을 내 마음에 담았다. ‘하루 24시간은 그분의 뜻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불완전한 내 계획에 있지 않다. 더러운 욕심이 숨어 있는, 겉으로만 거창한 목표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나의 눈앞에 펼쳐진 조금은 감당하기 벅차 보이는 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자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내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을 이룰 줄 믿기에, 그 선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는 일임을 알기에 담대하게 나의 삶을 그분께 맡기기로 결단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