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횃불을 들고 ‘나부터 개혁’에 앞장서자

11.gif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각종 의미 있는 모임과 행보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션라이프 페이스북을 통해 작은 루터로 살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어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교회개혁의 횃불

14세기 교회는 신앙보다는 정치나 경제적인 관심사들이 우선시되었다. 물질만능주의로 사치와 방탕이 절정을 이루어 부패가 만연했고 거짓교리와 관행들이 날로 증가했으며 성경의 가르침들은 무시되었다. 이런 때에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앞서서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하여 온 생애를 다 바친 사람이 바로 종교개혁의 샛별 존 위클리프(1320-1384)와 얀 후스(1372-1415).

존 위클리프는, 의식이나 면죄부 등으로 구제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그리스도적 생활로만 구제될 수 있다며 청빈의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교회의 미덕을 되찾을 수 있고, 성경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적 근원이라고 하며 영어로 성서를 번역하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 성경의 권위를 교회 안에서 다시 한 번 확립시키고자 라틴어로 된 벌게이트 성경을 영어로 최초로 번역했다.

성경 1권을 필사하는데 10개월이 걸렸지만 많은 양이 필사되어 보급되자 로마교회 지도자들은 당황하였다. 음모를 꾸며 3번이나 그를 법정에 소환하였지만, 무서운 악폐들을 혁신할 것을 요구하며 담대하게 반박하였다.

당신들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상품화하고자 하는가. 그대들은 누구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진리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을 아는가.”

영국의 국왕들과 로마 교황청은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화형을 내렸지만 그의 책은 널리 읽혀졌고 보헤미아의 사제인 후스에게까지 전달됐다.

위클리프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후스는, 개혁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성경은 백성들의 언어로 쓰여야 하며,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하고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속화에 빠진 고위 성직자들의 정욕적인 삶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 결과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되어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 성경의 존엄성과 권위를 짓밟고 정욕적인 생활에 빠져 세속화된 교회와 지도자들에 의한 정의로운 죽음이었다. 그는 교회와 지도자들의 세속화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예수님) 누더기 옷을 입고 울고 있는데 나의 주홍색 사제들은 호화로운 목욕을 즐기고, 나는 밤을 지새우면서 조롱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있는데 사제들은 축제와 술 파티를 즐기고, 나는 십자가에 달려 신음하고 있는데 사제들은 최고로 부드러운 침상에서 휴식하고 있구나.”

예수님은 청빈·순결·순종의 복음삼덕 정신으로 일생을 사셨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가난하셨고, 세속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철저히 배격하는 순결의 삶을 사셨다. 또한 성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하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지는 자리에 몸소 나아가셨다.

이마에 이단들의 주모자라는 머리띠를 쓰고 쇠사슬로 화형대에 묶여 죽임을 당하던 후스의 예언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

내 주 예수님은 나를 위해 진정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 그렇다면 나라고 주님을 위해 이 덜 고통스러운 면류관을 다시 쓰지 말란 법 있는가? 내 주님은 나를 위해 이보다 더 거친 쇠사슬에 묶이셨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 녹슨 철 쪼가리를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나는 내가 내 입술로 가르친 것을 내 피로 확증하노라. 오늘 당신들은 볼품없는 한 마리의 거위를 불에 태우지만 100년이 흐른 뒤에 영원히 태울 수 없는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

100년 뒤인 15171031, 백조인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무대로 등장하여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95개조로 반박했다. 진리를 판단하는 최종 권위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성경이며,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은혜에 근거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황제의 소환을 받고 보름스에 간 루터는 얀 후스처럼 화형 당할지도 모른다며 극구 말리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얀 후스는 불태웠을지 몰라도 진리는 불태우지 못했습니다. 지붕의 기와만큼이나 많은 악마들이 있더라도 나는 보름스에 가겠습니다. 저의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무것도 취할 수 없습니다.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그 목숨 건 개혁을 통해 오늘이 있었고, 존 칼뱅은 루터의 3강령에 오직 그리스도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더해 종교개혁 5대 강령을 완성하였다. 종교 개혁은 성경이라는 본질로 회귀하려는 오랜 세월에 걸친 개혁의 역사였다.

개혁의 첫발은 나로부터

성경의 본질로 회귀하는 교회개혁이 이루어진지도 어언 500년이 지난 21세기, 서구교회는 세속화되어 몰락했고 한국교회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다. 사명감을 가지고 500여 년 전 개혁자들을 본받아 다시 한 번 개혁의 횃불을 높이 올려야 할 때이다.

500년 전, 16세기 개혁자들은 부패와 타락으로 만연한 세상 속에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교회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이제 교회와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 청빈과 순결, 순종과 같은 경건의 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건한 삶을 요구받고 있다. 내가 먼저 변화되면 가정과 직장, 교회와 공동체는 더불어 변하는 것이다.

작은 루터로 살기 운동이 한국교회 전역으로 확산되어 개혁의 정신으로 새롭기를 소원한다. 교회 안으로는 물질만능과 세속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고, 밖으로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념)로 무장된 연합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동성애와 결혼의 합법화를 이루어 서구교회를 몰락시킨 사회운동가들과 정치인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교회 대적자들이 친이슬람 세력과 연대하여 한국교회를 전방위로 공격하고 있다.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오직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여 말씀대로 살고, 세속을 멀리하는 청빈의 정신으로 살 때 우리 삶은 순결해 진다.

국민일보와 CBS가 주최한 나부터 캠페인은 한국교회가 다시 종교개혁 정신으로 돌아가 실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행사다. 개혁은 삶의 변화가 원칙이다. 복음삼덕으로 삶의 기초를 세우고 다양한 사회적 노력들로 이어져서 잃어버린 그리스도의 영성을 되찾는 한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