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나누어 줍니다

지난 주일오후 학생부 예배를 드리면서 현묵이의 미니멀 라이프라는 영상을 보았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나 노숙자들에게 삼촌, 어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한 청년의 소박함이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쓰레기 봉지에서 캔을 줍는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로워 시작된 나눔이 어느새 청년의 잔잔한 일상이 되었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번 40만원으로 생활비 20만원을 쓰고 나머지 돈으로 달걀, 장갑, 음료수, 교제에 필요한 밥값, 야간조끼, 10kg 등을 사서 노점상 할머니나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청년은 고백한다. “모자랄 것 같은데 신기하게 모자라지 않는다.” 마트의 “1+1 행사도 새롭게 다가왔다. 하나를 덤으로 더 받는 것은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함이란다. 이웃들로부터 천사라고 불리자 이렇게 덩치 큰 천사 봤나요?”라며 활짝 웃는다. “예수 믿는 청년입니다.”라며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그의 손길이 정말 따뜻하다.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는 필요한 것 이외에는 가지지 않는 생활방식이다. 적게 가짐으로써 여유를 가지고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물건을 적게 가지는 것뿐 아니라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한 달에 3만원을 받지만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한 청소년에게 함께 미니멀 라이프를 몇 달간 조금씩 실천해보자고 하였다. 돈이 많다고 이웃이나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용돈을 아껴서 적은 것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 한 번 해 볼게요.”라고 대답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과 욕심으로 인해 삶의 중요한 부분에 도리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삶은 더 복잡해져 가고 있다. 상대방과 자신의 소유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고, 가지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더 많이 가지려다 상처를 받거나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더 가지지 못한 것에 고통하고 아파하며 신음한다.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너희 집은 몇 평이냐’, ‘아버지 직업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가치를 두고, 경제적 상황에 따라 웃고 우는 시대를 반영하는 모습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자살까지 이어지는 안타까운 소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적게 가질수록 하늘의 기쁨은 더 커진다는 삶의 원리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사랑은 움켜지는 게 아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는 이들은 단순하게, 청빈하게 살아간다. 가지지 못한 것으로 인해 애달파하거나 원망하거나 투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땅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하늘의 것을 소유하려고 애달파한다. 단순하고 가난한 삶 속에서 오히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한다.

마더 테레사는 어느 날 저녁, 여덟 자녀를 둔 한 힌두교인 가정에서 며칠 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쌀을 가지고 그 집으로 갔다. 그들은 몹시 허기져 보였고, 아이들의 눈은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말 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쌀을 건네자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것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돌아오자 어디에 갔었냐고 물었더니 그들 역시 굶주리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했다.

그들이란 식구 수가 같은 옆집의 이슬람교인들이었다. 그 어머니는 굶주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자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얼마 되지 않지만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어머니의 행복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날 저녁에는 쌀을 더 가지고 가지 않았다. 대신 다음날 조금 더 가지고 갔다.

한 번은 캘커타에 설탕이 대단히 부족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네 살 정도 된 소년이 부모와 함께 그녀를 찾아왔다. 소년의 손에는 작은 설탕 그릇이 들려 있었다. 소년은 그것을 건네면서 말했다. “이것은 제가 사흘 동안 먹지 않고 모아 둔 설탕이에요. 아이들에게 주세요.”

그 어린 소년의 사랑은 아주 진지했다. 그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사랑을 보여 주었다. 서너 살 밖에 안 된 것 같은 소년은 그녀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 소년은 어른들로부터 그곳의 처지에 대해 듣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마더 데레사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은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보관해 두라고 주시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쌓아 두면 쌓아 둘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어집니다.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나누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되지요. 무언가 원하실 때 아낌없이 내줄 수 있는 그런 후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청하십시오.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줍니다. 터무니없는 말 같지만 이것이 사랑의 논리입니다.”

우리는 작은 자의 길, 소박하고 선한 길, 가난의 길, 비움의 길, 희생의 길, 곧 우리 주님이 걸어간 길을 가야 한다. 더 크게 사업을 확장해서, 더 성공해서, 생활이 좀 더 안정되면 이웃을 위해 나누겠다고 한다. 냉장고에 음식들이 가득 쌓이고, 옷장에 옷들이 가득차고, 신발장에 신발이 늘어나도, 똑같은 물건을 두 개 씩 가지고 있어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우리들이다. 이 땅에 쌓을 것은 많아도 영원히 썩지 않는 하늘에 쌓는 것은 망설여지는 우리들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누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소망이다. 이 땅의 것은 점점 없어지더라도 하늘의 것으로 가득히 채워지는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가난을 통해 주어지는 불편은 십자가를 발견하는 길이다. 한 벌의 옷도, 거처할 집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내어주셨던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은혜의 길이다. 가진 것이 부족해도 그 가운데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더 가치 있다. 적게 가지면 가질수록, 버리면 버릴수록, 더 단순해질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전부를 드려 우리를 살리셨던 그 희생과 헌신을 닮아가는 사람들이다. 더 많이 움켜쥔다고 그것들이 결코 영원히 우리의 것이 아님을 유한한 물질의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추구하고 싶은 것은 욕심이고 죄다. 성경은 모든 것이 다 사라질지라도 영원히 낡지 않는 하늘의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였다. 왜 기뻐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가난한 사람들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조금 놓고, 버리고, 나누고, 베풀고, 흘려보내면 내 것은 천국에서 더 많아지는 이치, 그것이 천국적 삶이다.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나누는 특별한 계산법의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내 손에 든 것들을 활짝 펴서 누군가에게로 전달하는 기적을 심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