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것이기만 하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많았다. 피아노를 배우면서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는 학교에서 이것저것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승의 날마다 책상에 쌓여있는 선물도 부러웠다. 그때부터는 장래희망 란에 선생님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국악을 전공하게 되어 무대를 휘어잡는 연주자가 되기를 꿈꿨다. 국악이 적성에 그리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즈음에는 보육교사가 되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상상했다. 늘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무엇을 하고 싶다는 소원은 끊임없이 떠올랐다.

하나님께 헌신한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 길을 갈 때는 내 계획을 주님께 온전히 내려놓고 무엇이든 시키시는 것만 하겠다고 결단했지만, 뜨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식어지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하나님은 때마다 나의 영적 수준과 재능에 부합한 딱 맞는 일들을 맡겨주셨다. 하지만 좀 더 재밌는 일, 획기적인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은 계속 남았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화려한 금그릇보다 매력적인 은그릇보다 깨끗한 질그릇을 원하심을 알려주셨다(딤후2:20-21). 내가 무엇을 하는지(doing)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지(being)에 관심이 있으셨다. 나의 능력과 일로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아내는 사랑임을 가르치셨다. 하지만 내 귀는 더 멋있고 위대한 것을 성취하라는 자아의 요구에 귀 기울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요란했고, 정신을 자주 산란케 했다.

이용도 목사님의 곁에도 이런 함정에 자주 빠지는 형제가 있었다. 늘 무엇이 되어보고자, 무엇에 쓰이고자 애썼으나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라도 되어 보려고 하면, 더 깊은 무기력에 빠지곤 했다. 무엇하나 큰일을 이루어 주님께 영광이 되고,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어깨를 좀 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목사님은 형제에게 깊은 진리로 충고하셨다.

이제 나는 나의 형제에게 권하노니 너는 아무것도 되려하지 말지어다. 네가 무엇이 되어 필요할지, 아니 무엇을 만들어 달라고 욕구도 세우지 말지어다. 하나님은 벌써 너에 대한 충분한 설계와 심산(心算)이 있었나니 너는 다만 전체를 그에게 맡기고 다만 그가 끊임없이 임하시기만 기다릴 것이니라. 주께서 충분히 주무르시어, 무엇이든지 너는 되지 아니치 못하리니 그때에 무슨 이름이 명명(命名)될지 알 자가 없었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될지 알지도 못하는 흙덩이를 갖다놓고 수시로 이름을 부쳐가지고 나는 이것이 되겠다 하는 자여. 네 얼마나 어리석은 자임을 알지 못하겠는가. 너는 될 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하나 되리라. 주께 완전히 빠졌으면 주의 그 정신을 나타낼 무슨 그릇하나는 분명히 될 것이니라. 혹 목사, 장사꾼, 직공(職工), 걸인, 미치광이, 전도자, 아무개 아버지, 혹 아무개 어머니 등 그 외 많은 이름.

무엇이든지 주께로부터 너에게 오는 이름 하나를 허락하시고 그 이름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런고로 너는 아직 무엇이 될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것이었느니라. 지금에 너는 무엇이 되려고도 말고 무엇을 바라지도 말라. 다만 전체를 주께 맡길 따름이니라. 그리고 끊임없이 주의 손의 가공을 받아 묘할 것이었느니라.”

내가 무엇을 할까, 무엇이 될까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우리 인생의 그릇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다만 전체를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릇이 이상하게 빚어지는 것은 토기장이의 손길을 믿지 못해 이리 저리 피해서 그런 것이지 주인에게 흠뻑 맡긴 그릇에게는 결코 염려할 일이 없다.

오늘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식을 무엇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는 부모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달라는 기도뿐이다. 제 멋대로 설계하여 최종 승인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떼쓰는 소리가 천국의 소음으로 가득하다. 맡기기만 하면 되는데, 주의 손에 온전히 쥐어지기만 하면 되는데, 자신의 욕심만을 들이미는 어리석음에 주님은 오늘도 탄식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소망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다. 다만 더러운 욕심이 묻은 꿈을 깨끗이 씻으셔서 선한 모습으로 바꾸어 쓰시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무엇 하나 내가 하고 싶은 것 이루어 주시지 않은 것이 없다. 예배를 돕는 피아니스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 때마다 국악 연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연주가, 무엇하나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 주님이시다. 이렇게 좋으신 주님이신데, 더 이상 무엇을 고민하랴. 모든 욕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가만히 있자. 주의 것이면 어떤 도구여도 괜찮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