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두 렙돈을 사랑하시는 주님         
    

안수집사 시절에 교회의 재정부원을 맡게 되면서 재정을 올바르게 맡을 수 있도록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꿈을 주셨다. 상당한 금액의 십일조를 헌금함에 넣는데 평소에도 무명으로 헌금을 드렸던 터라 그때도 무명으로 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큰 헌신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때, 어느 집사님께서 조 집사님이 했구나!”라고 말했고 손사래를 쳤지만 마음속에서는 흐뭇해하는 것이었다. 순간 하늘에서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않는다!” 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늦은 후회와 함께 장면이 바뀌면서 예배 장소에 내가 있었다. 헌금 바구니가 성도님들 사이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헌금 바구니가 강대상 위로 올라갔을 때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구니 안에는 담뱃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피다 만 담배꽁초들이 담뱃재 위에 꽂혀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누군가는 침까지 뱉어 놓았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두렵기까지 했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우리가 외식적인 헌금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철저히 살펴야 할 일이다.

나는 당시에 교회에서 재정부원이면서 구역장 직분도 맡고 있었다. 70대 후반 고령의 독거 할머니께서 새신자로 교회에 등록하셨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구역 모임 때마다 모시러 다니곤 했다. 그러면서 친분이 생겼고 할머니의 자녀들 형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녀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잘 모르신단다. 3남매 자녀를 두셨는데 가난이 너무 싫어서 다들 떠났다고 한다. 외롭게 사시면서 의지할 데가 없으셨던 할머님은 30여 년간 불상을 집에 모셔놓고 살아온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구역 식구들의 꾸준한 섬김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면서 변하기 시작하셨다. 구역 모임을 위해 모시러 가면 미리 도로변에 나와 계셨고, 매번 구역예배 때마다 헌금할 지폐를 깨끗하게 물로 씻어서 다리미로 다려서 헌금하시곤 했다. 주말이 되면 주일을 위해서 새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다려서 곱게 차려 입으시고, 환하게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시곤 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면 허리가 굽고 다리가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 늦은 걸음으로 현관을 나서시면서 우리 아이들을 찾고는 손이라도 한 번 꼭 잡아보곤 하셨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서 한 달에 아주 적은 금액을 보조받고 계셨음에도 꼬박꼬박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셨다. 많은 헌금봉투 중에 유독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였고 얼마 되지 않는 액수여서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깨끗하게 다리미로 다려진 헌금이었기에 나는 할머니의 헌금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그 헌금봉투를 계수하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한동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진심으로 주님께 드리려는 정성이 마음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반드시 기뻐 받으시는 헌금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회를 떠난 지 몇 개월 후에 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가 봤더니 의식이 없으셔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고 보호자가 없어서 한동안 혼자 계셨던 것 같다.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나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의 발이 시트 바깥으로 나와 있기에 덮어드리려고 발을 만져 봤더니 차디찬 얼음장 같았다. 평생 고생스럽고 외롭게 홀로 사시다가 좋은 천국 가시려고 마지막 남은 인생을 그리도 열심히 주님 앞에 정갈한 삶을 사셨나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종점은 천국인데, 소망은 가지고 있으나 이별이라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관문을 지나지 않고 천국을 생각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죽음 없는 부활을 꿈꾸고,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주님 앞에 간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

히브리서 11장에는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믿음 때문에 받는 시련과 박해의 환경에서 구차하게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으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일심으로 장렬한 죽음을 기쁘게 맞는 믿음의 선진들이 증인이 되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부모들이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에게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줌으로써 맡겨주신 다음세대들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뿌리를 내리도록 돕고 양육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겠다. 이것이 부모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귀중한 사명이다. 작은 두 렙돈을 드린 과부는 그 마음 전부를 주님께 드렸고, 주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셨다.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관을 바로 알고 전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조장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