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전진하며

잃어버린 물건들은 다시 되찾거나 혹은 구입할 수 있으나 중병이나 사고로 인한 신체적 상실은 되찾을 수 없다. 신체적 상실은 정서적, 사회적, 영적 상실까지 함께 올 수 있다. 도무지 위로할 길 없는 상실로 인하여 무너져 버린 일상과 사라져버린 꿈을 깨달을 때마다 슬픔과 눈물이 홍수를 이룬다.

남편과 아이가 앓고 있는 희귀난치병인 헌팅턴 병 세미나 모임에 참석한 후 아득한 슬픔과 안타까움, 원망과 허탈 등의 갖가지 감정이 마음을 휘감았다. 함께한 분들과 느끼는 감정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일했다. 오랜 세월 아픔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이기에 저마다 이 고통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 하는 눈빛이 교차되었다.

1년 전 함께 헌팅턴 병을 이겨나가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SNS와 모임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는 단지 우리 가정과 교수님뿐이었다. 지금은 열네 가정이 함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병으로 진료받은 분이 200여명 가량이지만, 의료계에서는 유전병이라는 이유와 기타 뇌질환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행태 때문에 진료받지 않은 분들을 감안할 때 대략 2천 명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이웃 일본과 비슷한 수치이며 미국과 유럽은 더 많은 환자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날 세미나에 함께한 분들은 환자와 가족들, 의료진까지 해서 총 15명이었다. 세미나 내용은 환우회 연혁과 활동, 환우회 로드맵, 헌팅턴 병 매뉴얼 작성, 자문위원과의 시간 등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은 질의 응답시간이었다. 현재 환자의 병적 행태와 간병, 제도적 도움 등의 의견을 서로 나누면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 막막함 등을 토로했다.

한 분은 65세 되신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통해 남편의 유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병은 발병시기와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남편은 폭력을 동반한 조현병인 정신분열 증상을 보였다. 하루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후 112에 신고하여 정신병원 치료를 요구했으나 인권보호 때문에 정신병원 입원은 불가하다고 하여 넘겼는데, 다음날 아내가 출근 한 후 남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하반신 불구자가 되었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대구에서 오신 분은 여동생이 이 병을 앓고 있다. 고집과 집착이 심해서 매일 같은 과자를 10봉 이상 구입해서 방에다 숨겨 놓는다고 했다. 운동신경도 점점 상실되기 때문에 몸이 많이 흔들린다. 비틀거리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위험이 있는데도 옆에서 붙잡지 못하게 해서 넘어져서 다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남편과 큰 아이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지금은 병을 앓고 있는 둘째 아들을 간병하고 있는 분도 계시다. 카이스트를 나와 모 기업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병이 발병하여 지금은 친구의 간병을 받는 분은 모임에 휠체어를 타고 오셨는데 이미 병의 진행이 많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인지상태도 떨어지고 말도 할 수 없지만 아직은 조금이나마 대화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갑자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손과 뒤틀린 몸, 찡그린 얼굴 근육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다.

! 얼마나 괴롭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흘리는 눈물은 절규의 한 표현이 아닐까.’ 집으로 오는 내내, 아니 잠자리에 들어서도 마음이 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항의했다.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파해야 하나요? 왜 내 아이는 이렇게 일찍 어린 나이에 발병했나요? 아빠처럼 30세 이후에 발병했으면 치료제가 개발되어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주님은 때로 임재와 응답을 주시면서도, 점점 깊어가는 병으로 상실이 커지는데도 침묵하신다. 그런 주님을 보면서 실망하는 모습이 지금 내 믿음의 현주소다.

주님의 음성이 마음에 들렸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나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제자들은 어떤 삶을 살다 갔는가. 주님은 제자들에게 결코 고난을 겪지 않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신 적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선지자들도, 어머니 마리아도, 믿음의 선진들 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주님은 삶에서 고통을 치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시며, 내 고통과 함께하는 분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운명도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다면 우리가 주님 닮기 위해 걸어가는 믿음의 길에서 고난과 고통이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 가운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다. 주님의 가르침은 너는 나의 가르침대로 살라.’는 것이다.

훗날 주님 품에 안길 것이며 또 부활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고난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고난 밑바닥에 잔잔히 흐르는 내적 기쁨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전진한다. 모든 아픔과 쓰라림과 고통의 눈물을 닦아주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