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노래하리라

예수님 잘 믿어보려고 수도자가 되었건만 산다는 것이 죄뿐이다. 지나가는 생각까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뿐이다. 내 것은 모두가 죄요 어두움뿐이다. 햇빛을 보기도 부끄럽고 달빛과 별빛을 보기도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도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수도실에 들어왔다. 방에 불을 켜니 풍뎅이가 드러누워 놀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 넓은 천지를 다 놔두고 이 죄 많은 수도사에게 왔니? 그래도 잘 왔다.” 돌팔이 수도사를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서로 인연을 맺고 잘 지내고 있다.

자다가 손등이 가려워 긁다가 발등도 가려워 두 발을 맞대어 비비고 있는데, 이제는 얼굴이 가렵다. 벌써 모기가 출몰했나보다. 이곳저곳 긁다 보니 작년 여름 모기 때문에 잠 못 잤던 생각이 났다.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모기를 잡을까 생각하다가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스쳐갔다. 벌떡 일어나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놈이 잠만 자려고 하니 작고 작은 모기를 통해서라도 저를 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놈은 저 모기보다 더 주님을 괴롭게 한 크나큰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러다 보니 새벽예배시간이 다 되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은 미물들을 나에게 보내셔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려나 보다.

뒤뜰에 벌써 냉이와 쑥, 가냘픈 연둣빛 새싹들이 대지를 뚫고 나왔다. 이름 모를 풀꽃들도 저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곳저곳에 피어올랐다. 긴 겨울의 터널을 뚫고 나와 고개를 내민 풀꽃과 새싹들, 나무들을 바라보니 대견해 보였다. “나는 언제쯤이나 한 줌의 재와 같고 구더기와 같은 겉사람을 다 뚫고 새사람으로 태어날까? 오롯이 주님만을 모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드려질까?” 비실비실한 약골 수도사, 주님 앞에 송구스러울 뿐이다.

도리재 고갯길 굽이굽이 지나 분홍빛 복숭아 꽃, 살구꽃, 개나리 꽃, 벚꽃 등 만개한 봄꽃들을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너는 그 추운 겨울을 이기고 승리하여 오늘에 이르러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였구나. 참 어여쁘고 사랑스런 꽃들이여, 너는 나의 스승이다. 나는 언제쯤 주님 제단에 향기로운 꽃이 될까?” 나가는 길목에는 어린 시절 버들피리를 만들었던 버들가지가 팔을 크게 뻗으며 악수를 건네는 듯했다. 뒷산에는 찔레꽃이 피었다. 마치 세상의 고통과 찔림에 슬퍼하지 말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힘차게 노래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수많은 들풀들도 방긋방긋 웃는다. 차마 죄인의 더러운 발로 미소 짓는 새싹들을 밟을 수 없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였다. 그것마저도 미안하게 느껴져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맨발로 산을 올라갔다. 모두 다 나를 가르치는 스승임에 틀림없다.

이른 아침 수도회 식사당번이어서 쌀을 씻어 밥을 지으려는데, 오늘따라 쌀 알갱이들이 유난히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들도 일제히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농부의 수많은 땀과 눈물과 희생으로 오늘 이렇게 박 수도사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희들은 압력밥솥에 들어가 하얀 쌀밥이 되어 먹히는 게 저희의 사명입니다.’ 쌀들에게 고맙다고 연거푸 인사를 하였다. 이리저리 잘 흔들리는 이 연약한 수도자를 위해 57년 동안 밥톨들이 수고해왔던 것이다. 그 고마움도 모르고 밥만 꾸역꾸역 쳐먹었으니 이놈이 검은 머리 짐승인지, 사람인지 부끄럽고 미안하여 밥은 먹지도 않고 설거지만 하고 나왔다.

수도실에 들어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았다. 천하에 둘도 없는 이런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다 흘리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속죄제물이 되어주셨던 그 은혜를 무엇으로 다 보답할꼬.

죄로 인해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만물의 찌꺼기만도 못한, 손톱의 때만도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이 죄인을 왜 이리도 사랑하셨는지, 무엇때문에 지옥에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을 위해 그 큰 희생을 치르시고 구원해주셨는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못나고 부족한 이 죄인을 선택하셨는지, 가장 게으르고 나태한 이 죄인을 당신의 종으로 삼으시고 마지막 때 난공불락의 말씀, 성경의 핵심진리를 듣게 하시고, 귀한 영적 스승님을 만나 수도사가 되게 해주셨는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함께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공동체의 목사님들, 신학생들, 성도님들,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속에 살게 하신 은혜가 너무나 고맙고 고마웠다. 이제와 보니 모두가 내게 스승이요 은인들이었다.

내쫓겨도 마땅한 이 죄인이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사랑과 섬김을 받으며 살아왔다. 참으로 갚을 길 없는, 모두에게 사랑에 빚진 자다. 철없는 수도자를 지금까지 사랑과 희생과 자비로 품어주신 모든 은인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무릎을 꿇고 간절히 그분들을 위해 주님께 한없는 자비를 내려달라는 기도만 드릴 뿐이다. 미움도, 시기도, 다툼도 주님에 대한 사랑에 감격하니 다 썰물처럼 떠내려갔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만 눈앞에 펼쳐졌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처럼 산에 올라가 미친 듯이 기뻐 뛰며 춤을 추며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었다. 들풀과 봄꽃에 입을 맞추고, 소나무를 부여잡고 노래하고 싶었다.

억초만생 만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늘의 별들아, 땅의 모든 나무들아, 들풀들아, 꽃들아, 새들아 지저귀며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라. 위대하신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라. 우리 주님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나신 분이 되셨노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그분이 우리의 왕이요 주인이시다. 그분을 높이 찬양하라. 주님이 곧 오시리라. 속히 만나러 가자. 할렐루야.”

일본의 내촌감삼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주님과 함께라면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시련의 밤이 어둡고 깊어도 감사하다고 했던 내촌감삼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거룩한 울림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크나큰 축복이다. 칼 힐티의 행복론이다.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이 있다. 감사하라, 그러면 기쁨이 있다.” 그렇다. 감사가 넘치면 기쁨이 넘친다. 기쁨이 넘치며 십자가를 지고 갈 용기가 생긴다. 감사가 넘치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복음에 빚진 자,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나아가리라.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복음을 들고 주님이 가라 하시는 곳으로 어디든지 나아가리라. 이 육신이 닳아 없어지고 순교하는 그날까지 쉼 없이 달려 가다보면 주님 만날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감사하면서 노래하면서 춤을 추면서.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