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데


하나님 모든 마음이 당신께로 열리고

모든 의지가 당신께 이야기하고

어떤 은밀한 것도 당신께는 숨기지 못하옵기에

청하오니 당신 은총이라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선물로

제 마음의 지향을 정결케 하시어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합당하게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도는 기도하는 그 순간 온전히 하나님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일상적인 삶, 특별한 삶, 고독한 삶 그리고 완전한 삶이 있는데, 완전한 삶을 위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에 보면 관상 기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방해, 즉 ‘무지의 구름’을 지나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곳의 구름은 하나님을 가로막는 의미로 표현 되어 있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무지의 구름’을 지날 때! 그때 비로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의로우신 주님을 만나려면 무지함에서 오는 어리석음을 속히 깨닫고 그 구름 속을 지나가야 한다. 진정한 평안에 대한 열렬한 간구와 그 기쁨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말이다.

하나님과 하나 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 누구도 이 세상에 그 무엇은 간데없고 주님과만 하나 되어 충만한 것이다. 그 놀라운 영적 전율에 사로잡혀 세상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심지어 육체의 극심한 고통까지도 넘어서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초인적인 기쁨에 겨운, 말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허드슨 테일러는 양자강보다도 더욱 힘이 있고 더욱 깊으며 더욱 넘치는 강물이 흘러나온다고 표현하면서 무지의 구름을 벗어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은혜의 소낙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드디어 마음이 순수함에 이르고 하나님의 뜻에 아무것도 거스르지 않게 되면 하나님의 빛이 폭포처럼 흘러들어온다고 했다. 또한 보좌로부터 빛난 물결 같은 조류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이 성신이요, 신선한 생명을 공급하는 물줄기 같아 평화를 준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토마스 아 켐피스는 네가 너를 완전히 허무한 것으로 여기고, 또 조물적 사랑을 완전히 끊어버릴 줄을 안다면, 나는 풍성한 성총과 더불어 네 안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다, 라는 시적인 표현을 한다. 이러한 경험을 히브리서 6장 5절에서는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경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면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생명의 감각이 충만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감각은 마음속에 기쁨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그 마음 상태와는 아무 상관없이 영체와 육체 가운데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감각이며 기도와 전도, 사랑실천이나 찬양 등 영적생활을 할 때 언제나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된다. 이 내세의 능력은 열두 가지 빛의 열매를 맺을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인데,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죄의 법칙과 반대가 되는 생명의 성령의 법칙, 즉 내세의 능력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겸손과 용기와 정직 등 모든 덕의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을 성도들의 의지 가운데 나타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즉 다리나 허리나 가슴이나 얼굴을 비롯한 몸 전체에 하나님의 생명이 감각적으로 체험되고, 항상 필요할 때마다 초인간적인 능력이 뱃속에서부터 몸 전체를 향하여 용솟음치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 되어 얽매인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리고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묵상이나 관상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사랑 외에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행복하지 않은 지성과 감성을 지닌다는 것. 무언가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단지 주님과 교통하기 위한 기도의 경지에 이른 기쁨은 얼마나 위대한가.

적나라한 의지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나님만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각오 때문에 설령 마음이 잠시 인간적인 기쁨에 휩싸일지언정, 열망은 이것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변함없는 강도로 하나님을 지향하는 것. 결국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해 뻗어 가는 적나라한 의지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망 속으로 아예 흡수되어 버리도록 말이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자리하는 무지의 구름에다 뜨거운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을 날려야 한다. 하나님보다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생각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는 하루에도 수 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어디론가 날아가려고 한다.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도 너무 자주 정착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것을 핑계 삼고 명분화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강력한 통제가 아니면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 아닌 것들에게 빼앗겨서 낙망하고 절망하다 지치기도 한다.

마음의 소원은 사랑하는 주님을 붙들고 차지할 수 있으나 생각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연약함이요 무지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들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당연히 기뻐 뛰는데 아닌 것들을 기뻐하면 마음의 정욕이 즐거워하게 된다.

더러운 죄를 떨어버리기 위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되새겨보거나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랑만이 영혼에서 죄를 완전히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된다. 낮 동안에는 밤이 찾아들 수 없듯이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는 죄가 발붙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것이야말로 죄의 토대와 뿌리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하나님을 향한 이런 불타는 사랑은 모든 성스러움의 근원이 되고 아울러 겸손과 자애를 영혼에 심게 된다.

하나님을 따르려는 자는 자기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거스르며 존재하고 있다는 참회로 인해 마음에 솟구치는 잔잔하고도 깊은 슬픔의 의식을 가질 때 이룰 수 있다. 죄의 뿌리와 열매 모두를 박멸시키는 절대적 확실한 길은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려는 적나라한 의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참회 역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끓어오를 때에야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모든 신앙의 가르침에는 하나님을 향한 내부의 강렬한 욕망이 그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 ‘전부’가 ‘무’로 명료하게 정의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의 의지는 주님 아닌 것들을 생각하는 것조차 괴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신앙여정 중,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이 거룩한 괴로움이 어서 오도록 철저한 의지적인 훈련과 노력이 절실함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죄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향한 의지를 결코 꺾지 말아야 한다.

사랑 외에

주님께서 죄인들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표상인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눅:7:47)를 부르시면서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그녀가 죄를 심히 슬퍼했기 때문도 아니요 그 죄를 걱정했기 때문도 아니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돌아보며 겸손을 보였기 때문도 아니고 다만 주님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놀라운 깊이가 우선이었고 그것이 죄의 고백을 이끌어 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만이 우리의 죄 끊음을 가능케 하는 힘이 됨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은총이 진정으로 마리아를 겸손케 변화시켜 향유를 시몬의 집에서 주님께 붓도록 그 마음을 이끌어준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에서 오는 은총만이 우리의 죄를 끊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분명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아파했을 것이다. 그 죄를 마음속에 부담으로 안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더 애처롭게 슬퍼하고 열망하고 더욱 애절하게 한숨짓고 정말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번민했던 것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를 끊고 버리는 결단을 빠르게 만들어 주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더 사랑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는 것같이 그녀도 그러했던 것이다.

자신이 모든 죄인 가운데서 가장 끔찍한 죄인이고 자신의 죄가 그토록 깊이 사랑하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심연을 만들었으며 자기가 나약해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도 바로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았던 것이다. 마리아가 얼마나 많이 자신이 범한 죄 하나하나를 건져내고 하나씩 주워 올릴 때마다 찬찬히 뜯어보며 슬퍼하고 통곡했을까.

거룩한 하나님 앞에 살게 되었다고 지독한 죄인이었다는 것을 곧잘 잊곤 한다. 그때마다 기억하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있게 하였고, 그 사랑에 감격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외길을 간다는 사실을. 주님은 우리에게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 그리고 확고한 의지를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끊어 버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도구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전부가 되는 삶은 행복하다. 사람들의 시선도 거칠고 사나운 환경도 못난 자아의 서글픔도 결국엔 그 사랑에 이끌려 다 극복할 수 있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