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그리운 시대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소 시대에 역류하는 바보스러움이 가득 하였다. 그 제자들에게도 바보스럽게 살라고 요구하셨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뺨을 대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 주고, 매를 맞으면 기뻐하라고 하셨다. 진정 복음을 따라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 눈에는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듯이 바보 한경직 목사, 바보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사람들이 그립다. 바보스러워 보이지만, 그들의 소박함과 진실한 삶이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아프리카의 바보 아버지

철학자, 신학자, 교수, 목사, 음악가, 저술가였던 슈바이처는 당시 사회에서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슈바이처는 “저는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행동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이 어떻고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행동이 없는 사랑은 아무런 쓸모없는 휴지만도 못한 것이니까요.”라는 말을 남기고 척박한 땅,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평생 자신의 뼈를 깎는 아픔을 겪으시며 큰 희생을 치루셨다. 그에게 고통과 인내는 삶의 동반자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우직함은 80세에 이르렀을 때도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였다. 나환자촌을 짓기 위해서. 노벨평화상으로 받은 상금조차도 그곳에 몽땅 부어 넣었다.

1925년 어느 날이었다. 중부지방 일대에 무서운 전염병인 이질이 퍼지기 시작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함께 일하던 의사들은 물론 간호사들까지도 기력을 잃고 시름시름 앓아갔다. 게다가 슈바이처 자신도 다리에 번진 종기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슈바이처는 급속도로 번져 가는 전염병과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그곳 원주민들에게 몇 가지 수칙을 일러주면서 누누이 당부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누구하나 그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6월말이 되자 전염병자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 어디에도 더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실의에 가득 찬 그는 한마디를 툭 내 뱉었다. “내가 바보였어! 이런 야만스러운 사람들 앞에서 내가 의사가 되겠다고 나서다니…”

그때였다. 조수 요세프가 지쳐 있는 슈바이처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이 바보인 것을 이제야 아셨나요? 난 처음부터 당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았다고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선생님 같은 바보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천국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어느새 요세프의 눈에도 그의 눈에도 감격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위해서 스스로 남들이 가지 않는 험준한 길, 바보의 길을 선택하셨다. 그들을 위해 오리가 아닌 십리까지 기꺼이 가 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 흑인들은 이렇게 울부짖었다. “아버지, 오 우리의 아버지!”

가난한 환자들의 바보

가난하고 병든 환자들을 위해 앉아 있기 보다는 늘 서 있기를 원했던 성산 장기려 박사님. 그는 자신의 집 한 칸 없이 병원의 옥상 가건물에서 지내며, 환자가 찾아오면 치료비를 따지지 않고 치료부터 해 주었다. 불쌍한 거지를 만났는데 주머니에 잔돈이 없자 수표를 선뜻 주기도 하고, 수술을 받고도 치료비가 없어 어쩌지 못하는 딱한 환자를 뒷문으로 도망치게 해 주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춘원 이광수가 장박사의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춘원은 자신의 어려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낌없이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장 박사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고 농담조로 그에게 말했다. “장 박사!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바보 아니면 성자야.” 그러자 장기려 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바보처럼 성자처럼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은 게 내 소망이요.”

어느 해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었다. 그의 집에 머물고 있던 제자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세배를 드렸다. 그러자 세배를 받은 박사는 덕담을 하였다. “금년에는 날 좀 닮아 보아.” 그 말씀에 가슴 울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제자 손동길은 모르는 척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닮아 살면 바보 되게요?” 그러자 장기려 박사는 “그렇지.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라고 말을 하였다. 이 땅에서 바보처럼 살다간 그는 하늘나라의 큰 기둥이 되었다.


오늘날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아이들을 처세술에 능한 ‘똑똑한 아이 만들기’ 경쟁으로 뜨겁다. 하지만 아이들의 영혼은 대학 입시와 성공 위주의 경쟁 사회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이 시대의 아이들의 눈을 밝혀줄 참된 스승이 그립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뒤처지는 것 같아도 영원히 썩지 아니할 참된 영적 양식을 공급해줄 영적 스승이 그립다.

어리석은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슈바이처, 장기려 선생님처럼 ‘바보스러운 제자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참된 스승이고 싶다.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미련한 자 같으나 지혜로운 바보가 참으로 그리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