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에 서 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다. 가끔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들을 때면 내가 가야 할 땅 끝은 어디일까?’ 하는 고민에 마음이 요동쳤다. 왠지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면 여자 슈바이처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몸을 바쳐 헌신하시는 분들을 볼 때도 뜻 모를 열정이 솟아올랐다. ‘사랑의 투사가 되리라.’ 외치며 봉사활동 갈 곳부터 찾기도 했다.

최근에 읽은 고() 이민아 목사님의 간증집 땅끝의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뒤바꾸어 놓았다. 내가 찾아가야 할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랑하고 싶지만 상처만 주고받으며 보이지 않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너무나 많았다. 비행기 타고 먼 곳에 가야만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허영심에 눈이 가려져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가야할 땅 끝, 그곳은 하나님도 자신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서 있는 그곳이었다.

이민아 목사님은 초대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박사님의 맏딸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늘 아무개 씨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공부를 잘 해야만 아버지의 딸로서 자격이 있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겉모습으로는 친구들도 많았고 공부도 잘 했고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마음속 깊이 있었던 고민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방에 앉아서 벽을 한참 쳐다보는데 자신 안에 또 하나의 음성을 들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 왜 살고 있느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밤이 되면 어두움이 무서웠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오늘 학교에서 어떤 애가 나를 힘들게 했어요.” 하고 부모님께 말하면 그런 것 무시해.” 하며 아버지는 글을 쓰러 들어가시고, 어머니는 네가 뭘 잘못했겠지.” 하며 이해해주지 않았다. 늘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부모님과 자신이 하나가 아니라 타인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모두가 잠든 집에서 자기 밖에 없는 단절감과 고독감을 느꼈다.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호기심에 아버지의 양주를 먹었는데, 불과 같은 열기가 몸을 지나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자신이 원했던 따뜻한 사랑이 느낌으로 전해져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몰래 술을 먹었다.

대학에 가서 술도 맘껏 마시고 연애도 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이제야 내가 찾던 사랑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이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상처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남편 생각을 하며 좋은 음식을 준비해놓고 기다렸지만, 낯선 땅에서 종일 궂은일을 한 남편은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거부당했던 상처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도망쳤던 아버지의 사랑의 빈자리는 남편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에게조차 한 마디도 못하고 혼자 결정하여 이혼했다.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너는 가문에 망신을 시켰으니 어떡할 거냐.’고 할까봐 두려워 떨면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자마자 너 왜 이렇게 말랐냐? 얼굴이 왜 이렇게 안 됐냐?” 하시면서 밥을 먼저 차려주셨다. ‘금지옥엽으로 길렀던 내 딸이 왜 저렇게 돼가지고 돌아왔을까.’하며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은 절대 아버지에게서 오지 않는다.’고 속삭였던 모든 거짓말들이 녹아버리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미안해요. 창피하게 해서 미안해요.” “네가 지금 내 걱정하게 생겼냐.” 아버지는 그냥 쉬게 해주셨다. 그것이 이민아 목사님이 처음 만난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아버지를 통해 다가왔다.

어느 날 본 교회를 찾아가다가 잘못 찾아 어느 교회로 급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자리에 앉는 순간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지금도 탕자가 그냥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는데 그 말씀이 소망으로 다가오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들어왔다. “아버지 싫다고 32년을 도망다닌 죄인인데, 구원받아도 헤매면서 살고 있는데, 제가 갈 곳이 있습니까? 아버지 집에 가면 쉴 방이 있나요? 저 너무 쉬고 싶어요. 너무 지쳤어요.” 간절한 기도가 눈물을 타고 나왔다.

하나님을 떠나서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간증에 마음 가득 애잔함이 흘렀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채 주변 사람들의 사랑에 늘 갈급해하던 나였다. 분에 넘치게 사랑받고 살면서도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야.’라고 속삭이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늘 자기연민에 빠져 살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만나고 나니 마침내 이거면 되겠다. 이 사랑이면 충분 하겠다!’ 고백이 나왔다. 여전히 십자가 사랑을 잘 공급받지 못하면 옛 습성이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목숨 걸고 사랑해야 할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나 자신이 싫고, 사랑을 받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완전히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서 갇혀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이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야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자신도 이웃도 아프게 하는 그들이 땅 끝에 서 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말이다. 누가 손을 내밀어주기만 기다리며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그들을 보고 있는 내게 말씀하신다. ‘땅 끝까지 이르러 십자가 사랑을 전하라.’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