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님의 사람아

홀로 저녁 늦게까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데 일 자체보다도 마음이 힘겹고 스산했다. 함께 일하는 분이 분주한 일들이 지속되자 어느새 투덜이 마르다가 되어버렸다. 자꾸만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표정과 퉁명스러운 말투에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의지보다는 감정이 앞섰다. 가슴이 죄어오고 괴로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이 길을 가야 하나?’  이런 저런 많은 일들에 매여 하는 일에 애정이 없는 듯 보이는 동욕자들의 모습도 울컥 떠올랐다.

그러나 이 일에 내가 가장 주범이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주제넘게 12년 넘게 이 일을 해 왔다고 알력(?)만 내세웠지 희생과 섬김이 없었다. 주어진 일만 딱 하고 더 이상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은 자신이 할 일만 딱 하고 그 외에 일에는 신경도 안 써. 정말 얌체야.’라고 비방을 했었는데, 어느새 그토록 싫어하던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 나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너무 하는 일에 소홀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오염된 물을 몰래 홀짝홀짝 마시다가 자신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토끼마냥 정욕에 취해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고약하고 못된 심보와 행동들을 깊이 성찰하기는커녕, 옛날의 섭섭한 생각까지 올라왔다. 마귀가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박수를 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 돼! 그러면 조금은 사람들의 마음이 요동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답답함과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안에 들어있는 오물까지 다 쏟아져 나왔다. 시커먼 연기가 방안에 자욱했다. 주위의 있는 분들도 콜록거리며 불편해 하셨다. 마귀는 정면으로 나와서 ‘그래 모든 것이 너의 어리석음이야.’라고 정죄의 화살을 가슴팍에 팍팍 쏘아대었다. 패배의 쓴잔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태만마귀까지 들러붙었다.

얼마 전부터 영혼의 피폐함과 안일함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 계속 금식사인도 왔지만, 또 무시해 버렸다. 완전히 영혼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좀 지나면 다시 회복되겠지.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무신경하고 배은망덕하고 오물 투성이에서 뒹굴고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그냥 두고 보실 수가 없으셨는가 보다. 더 이상 놔두었다가는 영영 죄의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가 보다.

회개할 줄 모르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아집적으로 계속 밀고 나가니, 이번에는 작은 망치가 아닌 큰 망치로 한 대 퍽 때리셨다.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아, 그럼 그렇지. 그냥 넘어가실 리가 없지. 사랑하는 자에게 채찍을 가하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정말 이번에는 오래 참으셨지. 그러기에 빨리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고 무릎을 진작 꿇을 것이지. 꼭 매를 맞아야 정신이 드냐’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두 자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남편도 사별하시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시던 어머니께서 ‘그래도 잘 이겨내시는구나!’ 했는데, 마음의 고통은 어쩔 수 없으셨는가 보다. 둘째 언니가 천국으로 간 지 4년 만에 대장암판정을 받으셨다. 너무 가슴이 쓰라리고 아팠다. 그동안도 마라의 인생을 사셨는데, 또 다시 이렇게 큰 고통을 주시는가?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듯 했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정욕의 술독에서 빠져나와라. 탕자야 어서 돌아오라.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내 품으로 돌아오라. 외로우냐? 괴로우냐?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아프고 쓰라리고 외롭다. 언제까지 내 손길을 멀리하고 다른 곳만 바라보느냐? 이 길이 본래 외롭고 힘든 길이란다. 광야 길에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은 쉽게 사라질 아침 안개일 뿐이다. 이 길은 본래 나그네길이다. 봇짐 하나 들고 홀로 걷는 길이다.

아주 잠깐만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고민 없이 지내고 싶었다. 이번 신문작업만 끝나면 잠깐 시골바람이나 쐬고 올까?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런 요구도 없는 엄마 품에서 잠깐만 쉬고 오고 싶었다. 그러한 나의 마음을 주님이 이미 알고 계시는 듯 했다. 네가 내 품을 떠나면 어디인들 참 안식이 있겠느냐? 어디인들 참 평안이 있겠느냐? 나를 떠나면 모든 게 가시방석일 뿐이다. 나와 함께 가는 이 길이 비록 힘들고 고달파도 이 길이 가장 아늑한 영혼의 안식처이다. 나와 함께 갈보리 길을 걸었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해 보아라. 그분에게서는 단 한시도 고통이 떠나지 않았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왜 방황하느냐? 왜 낙심하며 실망하느냐? 왜 두려워하느냐? 내가 너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노라. 나만을 바라보고 이 길을 함께 가지 않겠느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일어나거라. 이 땅에서의 고난은 축복이요, 영원한 기업을 얻기 위한 수고의 땀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상급을 주기 위함이다. 잠시 거쳐 가는 정거장에 미련을 두지 마라. 모든 염려를 네게 맡겨라. 어머니에 대한 연민도 아픔도, 모든 고통도 잊어버려라. 이것이 너와 네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너는 이 땅의 시민이 아니다. 저 천국 본향을 향한 나그네일 뿐이다. 저곳에서 누릴 더 큰 기쁨과 상급을 주시기 위해 잠깐의 고통을 허락한 것뿐이다. 네가 천국에 다다랐을 때 고백하지 않겠느냐? 이 모든 고통이 네가 염려하는 어머니를 위해 준비해 놓은 가장 값진 선물이다.

믿음의 눈을 열어라. 인내의 탑을 높이 쌓아 올려라. 똑똑한 체해도 교만이 섞인 포악보다는 좀 모자라 보여도 겸손을 지닌 온유함이 값진 보석이다. 힘을 내거라. 광야는 쉬기 위해,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한 곳이 아니다. 너의 영혼을 단련하는 훈련장이다. 지치고 힘이 드느냐? 그냥 주저앉고 싶으냐?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다시 너에게 새 힘을 주겠다. 다시 한 번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주겠다. 그러려면 내가 주는 고난의 보약을 쓰다고 뱉지 말고, 달게 마셔라. 그러면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가 끝나는 그날, 내가 너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내 품에 네가 안기는 그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딤전6:11).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