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계절

요 근래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랜만에 먼지 없는 하늘 보고 숲을 본다. 깨끗이 씻긴 녹음을 보고 햇볕을 튕겨내는 잎새를 본다. 라일락과 아카시아, 등나무 향기가 폐 속까지 들어온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 아무 염려 없이 자신을 내맡기는 삶은 향기롭다.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나무가 꽃을 피운다. 도종환 시인은 노래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우리의 삶도 때로는 심히 흔들린다. 하지만 견디고 견뎌 뿌리가 뽑히지 않는 한 그 인생의 꽃은 찬란하다. 심한 바람이 많은 계절에 뿌리는 더 튼튼해진다. 잎은 떨어져 나가지만 맺히는 열매는 탐스럽다.

주께서 우리를 바람 속에 놓아둘 때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시련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거룩한 기회이다. 욥은 고난 뒤에 하나님을 친히 뵈었다. 요셉도 억울한 모함과 옥살이 후, 살을 핥는 바람 속에서 우뚝 세워졌다. 사울의 질투로 인한 추격이 없고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없었다면 어찌 다윗이 성군이 되었을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향기는 멀리 가지 않는다. 세찬 바람이 없는 나무의 열매는 초라하다. 진정한 농부의 손은 고울 리 없다. 여기저기 할퀴고 마디가 굵어져 부드럽지 않은 그 손이야말로 탐스런 열매를 만든다. 바람이 많이 불어야 호수도 맑아진다. 잔잔하기만 한 물결은 녹조를 발생한다. 파도가 거칠어야 항해사가 노련해진다. 난기류는 비행사를 겸손케 한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줄타기 명수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기 쉽다. 하지만 여러 번 떨어지기를 반복한 이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진정한 명인이 된다. 가룟유다처럼 단 한 번의 실수가 죽음을 부르는 불행한 이들도 있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 번 실수한 사람이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 한 그는 수제자가 되었다. 많은 실수와 참혹한 실패 속에 예수님을 더 간절히 의지했던 까닭이다.

삶이 반듯한 사람이 한 번의 세찬 바람 속에 사라져 간다. 여러 번 실패한 사람은 주님의 은혜로 더 굳세어진다. 예수님도 많은 모욕을 당하셨다. 골고다 길에서 세 번이나 넘어지셨다. 어머니 앞에서 벗겨진 채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고 만인의 구세주가 되셨다.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 속에 실패와 실수와 창피스러움이 있다. 그것이 부활로 가는 길이다. 

천국의 문은 강한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의 절대 은총을 필요로 하는 이들 앞에 열리는 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을 마구 흔드신다. 더욱 세찬 시련의 바람을 허락하신다. 뿌리가 더 깊어지기 원하신다. 흔들려야 향기가 나고 흔들려야 열매가 달콤해진다. 시련을 견딘 이들이 복된 까닭이다.

바람이 거친 계절엔 실패를 두려워 말자. 바람이 주님의 사랑임을 믿자. 더 세찬 사랑을 기대하자.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