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새벽에 교회에서 집으로 향하던 중에 택시가 급차선 변경을 하는 바람에 접촉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한명이라도 더 태우려다 사고를 내신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놀란 마음에 우선 보험사에 전화를 하고 사고처리를 하는데, 택시회사에서 오신 분이 블랙박스의 영상을 보내주시기로 하고 마무리를 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하시며 사고 당시 들었던 과실보다 높게 사고 마무리를 짓기로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괘씸한 마음에 경찰에 다시 신고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주님께서는 손해 보고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하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손해 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 보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해주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하십니다(마5:39~42).

예전에 이유도 모른 채 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맞은 것을 돌려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쪽 뺨을 돌려대지는 못했습니다. 말씀은 익히 들어 잘 알지만, 그 순간 말씀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그저 억울함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며 한 없이 억울해하고 때린 자를 미워하기만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삶속에 적용하기란 어렵고 특히 손해 봐야 하는 경우는 더욱 실천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 나에게 닥칠 손익부터 계산합니다. 그러니 손해 보는 일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매우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부자 청년입니다. 예수님을 일대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좇으라는 말씀에 심히 근심하더니 결국 주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유익이 영혼의 유익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면 그만큼의 육적인 손해가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영적으로는 더 큰 유익이 따라옵니다. 당장은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지나가면 주님이 주실 영혼의 유익이 뒤따라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해 인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서 영적인 손해를 보고 맙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손해 보기를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세상도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더 깨끗하고, 순결하고, 정직하고, 희생하며 사는 자들이라고 알고 믿기에 세상과 다른 모습을 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소금과 빛의 행실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법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넓은 아량을 가지고 이해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불법에 대해서는 자기 기준의 잣대와 세상 법을 대어가면 철저하고 세밀하게 들추어내고 추궁하며 예수 믿는 것들이 저런다고 비난합니다.

육신의 손해는 영혼을 살찌우는 유익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돌아올 유익을 계산하지 않고 아주 작은 것부터 손해 보며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갑시다. 그러다보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능력이 심령 깊은 곳부터 솟아날 것이며,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