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낮은 곳으로

물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의 물줄기가 되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이다. ‘낮은 곳으로라는 말은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 안에 있는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흐름을 거스른다.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세상의 흐름은 높은 곳을 향하는 마음이다. 낮은 곳으로라고 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낮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출발이다. 낮은 곳이란 원래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다. 겸손이란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낮은 곳으로 가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겸손은 헬라어로 ’(humus)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땅바닥으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낮은 곳은 겸손의 자리다. 겸손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ility’와 굴욕을 의미하는 ‘Humiliation’은 라틴어 ‘Humilitas’에서 나왔다. 같은 단어에서 겸손과 굴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둘의 차이는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스스로 나아가면 겸손이 되고,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스스로 나아가지 않아 수치스럽게 억지로 나아가면 굴욕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자리(上席), 낮은 자리(末席)에 연연하지 말고 먼저 낮은 자리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발아래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된다. 체면과 위신을 벗어버리고 낮은 자리에 자신을 놓는 행위는 곧 상대를 우러러보는 행위다. 섬김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섬김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요즘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외롭지는 않은지 등등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헤아리는 모든 것이 섬김이다. 상대에게 칭찬이 필요하면 칭찬해주는 것이 섬김이요, 위로가 필요하다면 위로해주는 것이 섬김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국민을 섬긴다는 두 가지 신념에 따라 움직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백악관의 문을 활짝 열고 시민들의 애로사항이나 제안,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링컨은 죽마고우인 제임스 컨클링에게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미합중국 헌법에 있는 섬김의 약속에 따라 내가 국민의 종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한다네.” 겸손했던 링컨은 대통령 재직 기간 내내 이런 자세를 견지했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과 매클레런 장군의 일화는 유명하다. 매클레런 장군은 번번이 링컨의 지도력을 시험하고 그를 모욕했다. 장군은 스스로를 위대한 군 지도자라고 자부하며 젊은 나폴레옹이라고 불리기 좋아했다. 어느 날 저녁 링컨은 참모 두 명과 함께 매클레런 장군을 찾아갔다. 마침 그는 결혼식에 참석하여 집에 없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리자 장군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통령에게 곁눈 한 번 주지 않고 2층으로 곧장 올라가더니 내려오지 않았다. 30여 분이 지난 후 링컨은 하인을 불러 손님들이 기다린다는 걸 전해달라고 했다. 하인이 돌아오더니 장군이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참모들은 분통을 터트렸지만 링컨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무례함과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오. 승전보만 가져다준다면야 매클레런의 말고삐인들 못 잡고 있겠습니까!” 대통령은 이렇게 참모들을 타일렀다. 이런 겸손한 태도가 대통령으로서 링컨의 위대함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국민을 우선하는 쪽을 택했다.

또한 남북전쟁 당시 영내에 머물면서 병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하며, 친구가 되어준 대통령으로도 유명하다. 전장에서 병사들과 총 42일이란 오랜 기간을 보낸 뒤, 링컨은 말단 사병들의 가장 좋은 친구로 유명해졌다. 링컨은 부상병과 죽어가는 병사들의 침대 곁에서 그들을 목회자의 마음으로 보살폈다. 위로해주고, 겪은 일에 귀 기울여주면서 자신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일일이 병상을 돌며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넸다. 또한 최고의 의료시설과 치료를 제공하는 데 전력을 다했고,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특수 장비를 사비를 털어서까지 구입하기도 했다.

암살되기 일주일 전, 링컨 대통령은 버지니아 주 시티포인트에 있는 포토맥 군대를 방문했다. 안내를 맡은 위생국 직원은 대통령이 남부군 포로들이 있는 병동에 들어가려 하자 조심스럽게 귀띔해주었다. “대통령님, 여기 세 병동은 들어가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반란군밖에 없거든요.” 링컨은 직원에게 조용히 말했다. “남부 동맹군이겠지.” 링컨은 세 개 병동을 다 돌아보며 아군 병사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도 덜도 아닌 따뜻함으로 남부 동맹군들을 대하고, 스스럼없이 악수를 나누며, 그들의 복지 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적군 부상병들도 측은하게 여겨, 정기적으로 그들을 방문해 악수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링컨 대통령은 섬기는 지도력의 귀감이 되었다.

더 낮은 곳으로 가는 길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길밖에 없다. 삶의 자리인 가정이나 직장, 교회나 단체 속에서 섬김을 베푸는 기회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섬김을 받는 기회로 사용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낮은 곳, 더 낮은 곳에서 섬기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있는 곳임을 알았기에 시인 토머스 무어는 이렇게 노래했다.

겸손, 그것은 낮은 곳에서 천국의 모든 미덕들을 싹 틔우는 감미로운 뿌리!”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