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작은 길로


허드슨 테일러는 17세 때, “나를 위하여 중국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기꺼이 가겠다는 고백을 드렸다. 그리고 즉시 육체적 고난을 겪어야 하는 삶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깃털 침대를 매트리스로 바꾸었으며 음식을 먹을 때도 자제하기를 연습했다. 편안한 숙모 집을 떠나 가난한 항구도시 헐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년간 교제하며 사랑했던 연인이 결별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몇 주 전 주일학교 예배 때 들려주었다.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중국으로 가기 싫어서 여자 친구는 떠난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1학년 남자아이가 뜻밖에도 작은 길로 가야지요.”라는 말을 했다.

언젠가 넓은 문과 좁은 문에 관하여 비교 설명하면서 좁은 길로 갈 때 하늘에 상급이 많다.”는 말씀을 들려주었는데 이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로부터는 아이가 아빠와 샤워를 하던 중 넓은 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작은 문은 재미도 없고 길도 작아서 찾는 사람들이 적다.”고 말하였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아이는 좁은 길을 작은 길로 인식한 듯 했다.

허드슨 테일러는 두 자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아내마저 하나님 품으로 돌려보내고 난 뒤 주님을 먼발치에서 따르고 있는 자신을 애통히 생각하며 주님을 닮는 일에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에서 지속적으로 주님을 닮는 일에 자신을 채찍질하였던 것이다.

요즘 나를 보면 너무 게으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박차고 연단의 환경으로 뛰어들라고 재촉하고 계시는데 말이다. 아이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또 다시 내게 거룩한 부담감을 안겨 주셨다. “너는 지금 더 작은 길로 나아가고 있느냐? 예수님을 닮기 위해 얼마나 채찍질하고 있느냐?”

우리 인생은 교차로에서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반드시 어느 한 길을 선택하고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 길에서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다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과 불신과 염려와 근심이 발목을 부여잡기도 하고, 고통과 불편함을 겪지 않으려는 영적인 게으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은 열매라는 푯대를 향해 온 마음을 쏟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어떤 고통과 희생을 치르더라도 항상 넓은 길보다는 작은 길을 선택했다.

광야 여정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더 좁고 협착한 길이다. 이는 내면에 빛이 점점 더 밝아지기 때문이다. 빛을 따르며 꾸준히 좁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손해도 봐야 되고 고통도 당해야 한다. 결코 평탄하고 쉬운 길이 아니다. 좁은 길을 가면 갈수록 고통은 더 많은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생애에서 하나님께 두 번째 부르심을 받은 l943년을 특별한 해로 기록하였다. 17년간 낯선 이국 땅, 그것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인도의 빈한한 대도시 캘커타의 가톨릭계 학교에서 지리학을 가르치며 교사로 살아왔다. 그러면서 학교장 및 성 안나 수녀회의 수련장을 맡기도 했다.

이따금씩 캘커타 어느 곳에나 산재한 빈민촌을 두루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여서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없는 노인이나 병약자들이 밤사이에 층계나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게 예사였다. 상처 입은 여인은 환부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상태로 숨을 헐떡이며 노변에 누워 있고, 서구화의 물결을 타고 성이 문란해진 청소년 계층의 무분별한 동거생활로 신생아들이 골목골목의 쓰레기통에서 수거되기가 일쑤였다. 이런 참상을 애타게 생각하던 그해 9, 다르엘링으로 가던 기차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것을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고 말했다.

부르심이 뜻하는 것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내가 로레토 수녀원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나의 소명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주어지는 일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학교와 수녀원을 떠나라.”는 음성에 편안한 환경을 박차고 더 작은 길로 들어섰다. 앞날을 대비하여 3개월간 간호학을 배운 경험을 유일한 밑천으로 삼아 단신으로 모티즈힐 빈민촌에 찾아갔다. 빈민가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 처음 만난 사람들은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학교를 열고 싶다는 계획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꼭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칠판도 분필도 살 돈이 없었고, 학생들 또한 공부에 필요한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모티즈힐을 찾은 둘째 날엔 다섯 명의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웅덩이 근처의 나무 아래서 자신이 세운 최초의 학교를 열었다.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말해주었다.

주운 조그만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자를 썼습니다. 어린이들은 허리를 굽혀 땅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학교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테레사는 일을 하는데 가난은 필수적인 조건이라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들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에 대해 불평한다면 우리도 같은 것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고통 없이 일한다면 우리 활동은 사회사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탁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호의도, 정전에 대비해 발전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언제나 쉽고 편한 길보다는 불편하고 고통이 따르는 작은 길을 선택하였다.

사람들은 불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대적자들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성실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 일은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채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어라.”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판단에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길로 우리를 이끌지라도, 여러 해 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하룻밤에 무너질지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롭고 고독한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더 작은 길로 부르심에 신실하게 응답한다면 그곳에 진정한 하늘의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고통이 따를지라도 더 작은 길로, 빛을 향하여 더 작은 길로, 푯대를 향하여 더 작은 길로, 나를 채찍질하면서 더 작은 길로.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