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례와 위선의 껍질을 벗은 진정한 나눔

한국의 50대 이상의 부모 세대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자녀의 결혼비용 부담입니다. 과년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자녀의 결혼비용 때문에 육체적으로 큰 병을 앓고 있는 것에 버금가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공감이 갑니다. 수년 안에 결혼을 시켜야 하는 자녀들이 둘이나 되니 어떻게 그 비용을 감당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결혼시키기 위해 과도하게 물질을 사용한 부모들은 노후가 불안하게 되고 심지어는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녀들 또한 부모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하고 그 뒤에 양가 부모에 대한 부담으로, 또는 결혼을 위해 대출받아 쓴 물질 때문에 부부가 행복하지 못하고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도 돈이 부족하여 결혼하지 못하다가 부모가 집을 줄여 이사하고 대출까지 받아 결혼한 부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가 남에게 보이려는 체면 위주의 문화이기에 결혼식 당일에 비용으로 써버리는 물질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결혼 문화는 분명히 고쳐져야 합니다.

또 다른 체면 위주의 문화가 장례 문화입니다. 우리나라의 장례비용은 외국에 비해 보통 서너 배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장례 몇 시간이 지나면 소각로에 들어가 한 줌 재만 남기는 절차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있는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또 시대에 맞지도 않는 관습대로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최근에 한 신문사에서 벌이는 ‘작은 결혼식’이나, 에이지포럼에서 시작한 ‘사전 장례의향서 작성하여 놓기 캠페인’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허례허식이 많은 문화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좀더 실질적이고 아름다운 문화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매우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것을 바르게 바꾸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요즘 좀 잘 산다는 젊은 엄마들이 100만원이 훌쩍 넘는 유모차를 산다고 합니다. 이 유모차는 한국 매출이 전 세계 매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하며 이는 북미와 남미시장을 합친 비슷한 수치라고 합니다. 한국 부모들은 고가의 유모차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가의 유모차, 수백만 원 하는 명품 백, 명품 옷 등. 이런 과시문화가 팽배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굶주리고, 춥고 아파서 삶의 희망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믿음의 성도들은 보이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면의 아름다움과 깨끗함에 모든 관심을 가지고 주님 앞에 흠도 없고 점도 없기만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자기 몸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을 쓰고 남에게는 최대한의 것을 베풀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그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소박하고 검소하게 비용을 아껴서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7:30-31).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습니다. 아이의 돌잔치 비용을 줄이거나 돌잔치를 하지 않고 그 비용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돌 기부’가 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자녀의 첫 생일에 ‘생애 첫 기부’라는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하루 만에 없어질 돌잔치 비용을 좀 더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함으로써, 자녀는 돌잡이로 이웃의 손을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장차 그 아이가 자라서 이웃의 아픔을 덜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되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어떤 부모는 매년 자녀의 생일에 자녀와 함께 병원에 가서 희귀병 환자들을 위한 기부를 하고 환자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오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이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보내신 주님은 우리가 그들을 돕고 안아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바라시고, 또 우리에게 상급 쌓을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날씨도 추워지고 나눌 곳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주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예수님의 언 손을 녹여드리고 고픈 배를 채워드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임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