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걸어라


잠시 짬을 내어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내 삶이 고스란히 묻혀있고 오랜만에 가도 낯설지 않은 그곳에서 사흘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뭔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기차가 서서히 출발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낯익은 큰 건물과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살던 동네가 보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을 닦으며 그곳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연민이 밀려왔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빨리 교회에 나가셔야 할 텐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네요. 주님…’

그때 단어 하나가 불현 듯 스쳤다. 목표! 뚜렷한 목표라는 단어였다. 목표를 세웠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가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촉구하는 듯했다. 그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끝까지 가리라고 수없이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뒤를 돌아보며 애굽에 놓고 온 것에 연연해하고 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부모님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고 또 뒤돌아보았어요. 썩어 없어질 것들을 놓지 못해 슬퍼하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주님, 감사해요. 제가 무엇이기에 저를 이처럼 생각하시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지요. 주님의 사랑과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이 커서 갚을 길이 없네요.’ 순간 마음에 위로와 평강이 밀려왔다.

한국 강토와 만주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이성봉 목사님께서 모친의 별세소식을 듣고 여러 해 만에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만주집회 일자가 급박하여 겨우 하룻밤을 쉬고 그 이튿날 새벽에 떠나게 되었다. 이른 아침 평양에 도착하여 남의 집에서 공부하는 어린 딸들을 찾아갔다. 배급 쌀로 죽을 끓여서 찬바람이 도는 냉방에 앉아서 죽을 먹고 있었다. 순간 만주집회를 연기한다는 전보를 치고 며칠만이라도 아이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마음을 다 잡았다. ‘나는 인정을 죽여 버렸다.’ 만주집회 약속을 했으니 가야 되겠다고 벌떡 일어났다.

차 시간에 도착하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가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배웅하려고 따라 나왔다. 뒤축이 다 떨어진 운동화에, 양말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붉은 살이 드러나 있었다. 따뜻한 털모자 하나 쓰지 못하고 떨어진 수건으로 귀를 싸매고 따라온 애처로운 모습에 ‘에라 돌아서자. 만주 일자는 좀 연기하기로 하자’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궤를 멘 새끼 뗀 소가 번개같이 떠올라 다시 결심하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가라고 하여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려고 떨고 서 있는 어린 딸들을 보니 자연히 눈물이 흘러 나왔다. 기적 소리가 들리자 언 두 손을 들어서 흔들어 주었다. 멀리멀리 두 딸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평양역을 떠났다. 내 가슴 속에는 붉은 두 손길이 아직도 흔들고 따라왔다. 두 딸을 향한 혈육의 정에 치우쳐서 얼마 동안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아! 너는 주의 멍에를 메고 가는 소가 아니냐? 뒤를 생각지 말고 앞만 향하여 걸어가라.’ 목사님은 이 음성에 다시 용기를 얻어 목적지를 향했다.

처절하리만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영적 싸움이자 전투였으리라. “손에 쟁기를 잡은 자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눅9:62)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나니” 곧 정과 욕심까지 못 박은 것이다. 하나님의 용사는 인정관계에 얽매여서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님, 자신은 인정을 죽여 버렸다고 고백하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주님을 따라가셨던 이성봉 목사님처럼, 저 또한 인정을 죽여 버리게 하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해바라기가 언제나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있듯이, 오롯이 영계의 태양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힘차게 전진하여야 한다. 흔들림 없이 목표 위에 굳게 서서.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