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라 그리고 자유인이 되라

bfebbcad2.jpg독사의 눈처럼 독기를 품고 맹수처럼 달려들어 어린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 넣은 형들은 무섭기만 했다. 끄집어내는가 싶더니 헐값으로 애굽의 노예로 팔아넘긴 저들에 대한 원한은 영원히 잊지 못할 복수심으로 남았을 것이다.

오랜 후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애굽의 총리로 앉은 그 위풍을 보았을 때 그들은 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 동안 겪은 고통과 수모를 섭리로 볼 줄 알았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습니다”(45:5). 계속 불안해하는 저들에게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며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 하였다(50:21).

흉년을 대비시키려는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 일시 심한 상처를 당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원통함은 증발된 것이다.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대인(大人)이 될 수 있었다.

3천 명 군사를 동원하여 다윗의 목에 칼을 꽂으려고 추격해 온 사울 왕이 용케도 그들이 은닉하고 있는 캄캄한 굴속에 홀로 들어왔다. 원수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를 다윗의 수하들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고통이 일순간에 끝날 수 있는 행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원수 갚을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신념으로, 살려준 흔적으로 그의 옷자락만 베고(삼상24:4) 그를 안전하게 돌려보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109:4) 함이 자기 몫인 줄 알았다. 과연 성군(聖君)이었다.

자기 목숨 빼앗기 위해 돌질하는 폭도들을 위해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7:60) 하며 예수님이 하셨던 용서의 기도를 스데반 집사는 드릴 수 있었고 그 거룩함이 해맑은 천사의 얼굴을 만들었다.

나를 손상시킬 찌꺼기는 버려야 내가 산다. 쓰레기와 쥐의 원리를 명심해야 한다. 먹잇감을 남겨 놓으면 쥐새끼 같은 마귀는 즐겨 찾아와 괴롭힌다. “일만 달란트의 엄청난, 죽을 빚을 탕감받았다.”(18:24)는 감격을 가지고 작은 감정들을 풀어야 한다.

아내와 남편을 용서하라. 부모와 형제로부터 받은 상처를 하나님께 토설하고 씻어내라. 동료와 사람들로부터 받은 한 서린 것을 감사함으로 녹여내라. “내게는 하나의 불평이라도 과하다.”는 성자의 말을 되새겨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이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9:1).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