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같던 그 일이 내게도 왔다. 고열로 고통받던 분을 심방했다가 코로나19를 얻었고, 일주일 뒤엔 집사람마저 나눠 받아 꼬박 보름 동안 격리되었다. 가래와 기침, 몸의 통증, 어지러움 등과 함께 작은 방에 갇히고 말았다. 마치 우리에 던져진 작은 짐승처럼. 

갑자기 주어진 나만의 공간과 많은 시간 속에 모든 것이 끊어지고, 고립된다는 건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묶고 있던 얽히고설킨 줄들이 순간 툭 끊어지자 처음 겪는 고립경험에 내심 반가움이 일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사모했던 감옥, 그것도 모든 죄수가 싫어한다는 독방 생활이다. 봉사도 만남도 없는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부부가 죄인이 되어 수감된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성탄절과 연말을 꽉 채워 보냈다. 하지만 베들레헴 가난한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이 거기도 오시고, 축하와 위로를 건네러 온 목자들처럼 찾아온 선한 분의 선물도 받았다. 이 무슨 특은인가.

내 짐까지 다 짊어진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교회에 송구한 마음도 일었지만, 원치 않게 된 것이니 그냥 맡겨드릴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곤 맘껏 허락받은 독서와 기도와 찬양, 스스로 만든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이 적극적으로 시도한 주님 붙들기이다. 그렇게 사모하던 일이 이렇게 한순간에 일어나다니. 작은 고통과 함께 주신 절박한 영적 휴가였다.


교회 안에서 목사가 먼저 경험하면서 궁금해 하며 기다려준 교인들에게 분명히 할 말이 생겼다. 두 가지 기저질환이 있으며 나이도 젊지 않은 약한 자인데, 사람들이 생각하듯 코로나19가 그렇게 두려워할 병이 아니라고. 그냥 감기나 독감 정도이고 중병으로 죽음까지 가는 경우는 감기나 독감도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기본적 방역을 잘하면 된다고. 그리고 설령 걸린다 해도 매우 유익한 영적 시간을 갖게 된다고. 후각과 미각이 조금 상실되는 것도 영적으로는 매우 유익하다고.

이 현대에 사람들을 겁박하는 것은 물리적 힘이 아닌 두려움에 있다. 공포심이 일어나면 사지가 마비된다.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을 노예 삼으려 한다. 자기 말만 잘 듣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것들과 충돌하길 원하신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마귀 편에 선 사람들은 놀라는 사람들을 겁주며 정복욕을 만끽한다. 고분고분한 선량한 사람들이 자기 종인 줄 착각하면서. 그러나 주님 편에 선 사람들은 악인의 배후에 있는 마귀를 바로 보며 대적한다. 주님을 방패와 무기로 삼아 담대해진다. 그러니 더는 두려워 말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소망은 사랑을 이루는 줄 아는 까닭이다.

앞으로 더 자주 겁주는 일이 많아지리라. 마귀가 제때가 다 된 줄 알고 조급함이다. 더 자주 주님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불의와 불법 앞에서 의연하셨던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자. 그 뒤를 바싹 좇자. 주님이 도우신다. 주님이 힘주신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