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 감이 빨갛게 익었다. 장대로 홍시를 따서 소쿠리를 들고 계신 분에게 넘겨주었다. 홍시가 터져서 줄줄 흘러내리는데, 옆에 계신 분이 “와, 너무 맛있어요. 목사님도 한 번 드셔 보세요.”라고 하셨다. 터진 홍시를 한 입 먹어보니 정말 달고 맛나서 내친김에 땅에 떨어져 있는 홍시를 주워서 3개나 먹었다. 어느 분은 “이렇게 맛있는 감은 처음 먹어보네요.” 하며 집에 계신 남편에게도 갖다 드리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장대로 홍시를 신나게 따드렸다. 몇몇 분들도 홍시를 맛나게 드시고 나머지는 검은 봉지에 담아서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돌아가셨다. 

이맘때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놓고 논으로 달려갔던 시절이 떠올랐다. 벼 탈곡기를 밟으면 윙윙하는 소리가 논두렁에 울려 퍼졌다. 뽀얗게 먼지가 머리에 쌓여도 벼 터는 재미에 신이 났었다. 땀을 훔치며 어머니께서 막 쪄오신 따끈한 고구마를 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꿀맛이었다. 밤늦게까지 벼 타작을 하고 난 뒤, 다음 날 아침에 콩 타작을 하고, 고구마도 함께 캤다. 작은방 윗목에 수북이 고구마를 가득 채워놓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했다. 가을에는 논으로, 들과 산으로 온통 익은 열매를 추수하는 기쁨이 가득했다. 밤, 대추, 들깨, 다래와 머루 등이 주렁주렁 익어서 망대기에 가득 따오곤 했었다. 추수 때의 기쁨은 참 행복하다. 

농부이신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목적도 익은 열매를 추수하러 오시는 것이다. 세상 끝에 알곡은 추수하여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거두어서 불사르기 위함이시다. 추수에 대한 원리는 마가복음 4:26-29에 잘 나타나 있는데, 싹이나 이삭이 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절대 추수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싹이 난 때로부터 점진적으로 성장하여 완전히 익은 열매가 되면 하나님 나라 곳간에 추수되는 것이다. 

싹이 난 믿음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초보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가리키는데, 요한일서 2:14을 보면 이러한 성도들을 아이들의 단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삭이 나온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청년들의 단계에 해당하고, 익은 열매가 된 성도들은 아비들의 단계에 도달한 성도들이라고 한다. 이들을 에베소서 4:13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성도들’, 고린도전서 2:15-3:1에서는 ‘신령한 자들’, 히브리서 5:14에서는 ‘연단을 받고 선악을 잘 분별하는 성도들’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다니엘 12:10은 보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고 희게 한다고 하였으므로 성도들에게 연단은 장성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조건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연단을 받는 가운데 정결하게 되어 주님이 재림하는 때 추수할 수 있을 만큼 익은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정결하게 된 성도들을 추수하여 천국 즉 하나님의 곳간에 들이신다. 성경에 있는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종말론적 말씀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모든 성도는 세 종류로 구분하여 추수하시는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이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처음 익은 열매들을, 대환난 중에 흰 구름 위에 앉으셔서 두 번째 익은 열매를 즉 순교자들을 추수하시는 것이다. 끝으로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대환난 동안 연단을 받고 살아남은 성도들을 추수하신다. 

특히 대환난 동안 불신자들을 엄청난 환난과 고통 속에서 점점 불신과 죄악이 더 심하게 될 것이며, 성도들은 연단을 받아 점진적으로 정결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말씀이 다니엘 12:10이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이는 대환난을 통과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가 많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 연단을 받고 점진적으로 정결하게 됨으로서 익은 열매가 되리라는 것을 예언해준다. 

스가랴 13:1에서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라고 하셨다. ‘샘’은 에스겔 36:25에 나온 맑은 물이 흘러나오게 되는 하나님의 샘인데, 맑은 물은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을 깨끗하게 닦아줄 성령의 물을 가리켜 말한다. 성도들은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온갖 죄와 더러운 행실을 진정으로 참회하면서 행실을 정결하게 빨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은 매일매일 죄와 허물을 맑은 물로 씻으면서 익은 열매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천국은 이렇게 익은 열매가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받으며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곳이다.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추수되어 하나님 곳간에 들어가는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시는 분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했으며, 죽기까지 충성하셨다. 또한 흠이 없는 순결한 삶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끼쳤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강점 아래 7년 동안 감옥에서 온갖 종류의 고문 끝에 순교하셨지만, 그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기였다. 그곳에서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의 성품으로 익어가셨다. 평양경찰서와 교도소에서 옥중생활을 할 때 같은 방의 동료들에게는 물론 자기를 고문하던 형사들에게까지 온유한 사랑과 겸손한 모습으로 섬기었다. 이에 공산당들도 목사님만은 존경했다. “주 목사는 주먹밥 한 개도 반만 먹고 배고프다는 같은 감방에 있는 자에게 나눠주는 것은 보통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랑엔 불량배마저 그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지는 신적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감옥에서 별의별 고문을 다 당했는데, 정말 견디기 힘든 고문이 두 가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이었다. 때리고 지지고 볶고 하는 고문은 견디겠는데 잠을 안 재우는 것은 정말 고통 그 자체였다. 그 이유는 정신이 흐려지고 몽롱해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 앞에 절하게 될까 싶어서였다. 또 하나는 널빤지 위에 올려놓고 아랫도리를 발가벗겨 밧줄로 꽁꽁 묶어 꼼짝도 못 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요도에다가 쇠꼬챙이를 쑤셔 넣기까지 하여 기절을 여러 번 하셨다. 그 고문을 당하고 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감옥 안에서 소변을 볼 수 없어서 통증 때문에 바닥을 벌벌 기어 다니기도 하셨다. 한번은 사모님이 솜을 넣은 바지저고리를 넣어드렸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발 옷 속에 솜 넣지 마시오. 내가 입을 열면 엄살이 될 것 같아 말하기가 싫었습니다. 고문이 끝난 뒤에 돌아오면 내 옷은 피에 흠뻑 적습니다. 그 피가 두툼한 솜에 스며들어 마르지 않습니다. 피에 젖어 축축한 옷 밑에서 터진 살이 자꾸 곪으면 고름이 흐르고 피와 고름이 섞여서 얼어붙으면 그것이 칼처럼 다시 내 살을 찢습니다. 고문 끝에 기절하면, 양동이에 찬물을 끼얹는데 그 찬물이 옷에 베여서 피와 고름이 함께 얼어붙으면 나는 옷 얼음판 위에서 떨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솜을 넣지 마시오.” 

고문 끝에 감방으로 돌아가면 간수가 하루 두 끼의 콩밥을 넣어주는데, 그 밥을 먹으려면 뭉그러진 육체를 바로 세울 수가 없어서 언제나 기어서 다가가야 했다. 때때로 그걸 먹지 않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그 고통을 받아들였다. “이 쇳덩어리의 무게가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겪으신 그 고통의 무게에 비할 수가 있는가? 이는 고난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시간이다.” 어떠한 고통이 있어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던 주 목사님은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신 분이고, 휴거 성도의 자격을 갖추신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서 “주님, 그때 제 이름도 불러주세요.”라며 깊어가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님의 긍휼을 구해본다. “주님, 이 가을 열심히 익어가게 하소서.”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