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들이 별처럼 아름답다
이른 새벽, 배추벌레를 잡기 위해 젓가락을 들고 텃밭에 올랐다. 배추 잎에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여기저기 갉아 먹은 흔적이 보였다. 벌레들이 모두 다 어디에 꽁꽁 숨었는지 배추 잎을 하나하나 들추어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함께 벌레를 찾던 한 자매님이 아무래도 저녁에 전등을 켜고 잡아야할 것 같다고 하였다. 배추 잎을 뒤적이다가 결국 포기를 한 채 옆에 심어 놓은 고추를 바구니에 따서 담기 시작하는데, 배가 몹시 고팠다.
땡그랑 땡그랑 8시, 아침 식사 종소리가 오늘따라 왜 그렇게 기다리려지는지 감나무 잎 틈새로 보이는 주방으로 눈길이 자꾸만 갔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재빨리 텃밭을 내려갔다. 허기진 배를 달래듯 밥을 푹푹 떠먹는데, 얼마 전 폰에 담아 두었던 교보문고 광고판의 이생진의 글귀가 가을바람에 일렁인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광명한 새벽별”(계22:16)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벽옥과 홍보석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하신다. 선하신 우리 주님은 자신의 피와 살로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리셨다. 벌레 같은 죄인들을 먹여 살리고자 손과 발과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려 피가 낭자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어두운 행실과 악습에 빠져 징그러운 벌레 같은 더럽고 추한 깡마른 영혼일지라도 주님은 단 한 번도 외면치 않으신다. 시도 때도 없이, 염치없이 주님의 살을 뜯어 먹어도 단 한 번도 고통스럽다고 원망불평도 귀찮음도 없으시다. 우리가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다. 친히 당신의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놓으신다.
주기보다는 내 것을 먼저 챙기는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스러운 마음에도, 벌레 같은 우리의 습관에도, 주님은 찢긴 살과 피로 얼룩진 손을 내미신다. 주님이 걸으셨던 그 흔적들은 새벽별처럼 아름답고 눈이 부시다. 
마더 데레사가 쓴 “말씀”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싫증내지 말고 주십시오. 그런데 남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받을 때까지,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주십시오.” 실제로 그녀는 예수님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라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아름다운 길을 걸으신 분이다.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프예에서 알바니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8살 때 아일랜드 더블린의 로레토 수도회에 들어가 이듬해 캘커타의 성모여자고등학교에 가서 2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때는 식량은 아주 적고 할 일은 너무 많았던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잖아도 별로 튼튼하지 못했던 데레사는 결핵에 걸려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히말라야산 기슭의 작은 언덕에 있는 다릴징으로 보내졌다. “부르심 안에서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은 것은 1946년 9월 10일, 바로 기차 안에서였다.
“그 메시지가 아주 분명했기 때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을 위해 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이것이 그분의 뜻이라는 것과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어머니가 되어주었던 마더 데레사. 작달막한 키에 파란 줄이 들어있는 꼬깃꼬깃한 무명천의 흰색 사리식 옷을 입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녀를 일러 사람들은 ‘마더’, 즉 ‘어머니’라 부른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버려진 아이들, 병든 이들,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세상에 등불을 밝힌 데레사는, 120개 이상의 국가에서 희망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다. 허물어진 나병환자의 손에 입을 맞추고, 구더기가 들끓고 악취 나는 몸을 씻겨주고,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를 끌어안고,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내어주는 자기희생과 그칠 줄 모르는 그 사랑을 실천하였다. 어떻게 한 여성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내가 걸어온 길은 단순합니다. 믿음을 갖고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길을 걸으셨지만, 수많은 영적 자녀들과 가난한 이들을 먹여 살린 모두의 어머니였다. 옷 두 벌, 샌들 한 켤레, 물통 하나, 접시 하나, 그리고 빈약한 침구가 가진 전부였고 더없이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렸던 흔적들은 별과 같이 빛났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벌레 같이 취급받고 외면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먹여 살리고자 죽음 앞에서도 가난하고 싶어 했다. “매일 매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죽음 앞에서도 가난하고 싶습니다.”
1996년 11월 23일,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의사들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구경도 못하고 죽어 가는데, 왜 나는 이토록 극진한 간호를 받아야 합니까? 제가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냥 죽어가게 해주십시오.” 죽음 앞에서조차도 가난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고 안락한 병원 침대 위의 자신을 자책했다. 평생 동안 가난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부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마자 상금으로 받은 19만 달러는 즉시 나환자 수용소 건설 자금으로 쓰여 졌고 축하연도 취소했다. 1981년 한국 방문 시 비행기에서 내린 테레사의 모습은, 허름한 옷에 성경책, 잿빛의 헝겊 가방을 든 굵게 마디진 빈손뿐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희생정신이 없다면, 기도하는 삶이 없다면, 참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일을 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과 고통이 따른다. 주님을 진실로 따르는 이들은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고 포기하며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며 우리를 영원히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다. 전부를 주시고도 변함없이 자신을 주시는 주님의 그 사랑에 우리는 날마다 응답해야 한다. 지금 내 몸이 뜯기고 먹힘을 당한다 해도 주님처럼 남을 살리는 흔적에 기뻐해야 한다. 나를 포기한 채 남을 먹여 살리며, 아프고 찢긴 구멍 숭숭 난 흔적들은 주님 앞에서 별처럼 빛이 난다. 나의 작은 희생도 주님은 빛나는 별로 반짝반짝 상으로 주신다. 그 사랑의 자리로, 섬김과 희생의 자리로 빛나는 별이 되어 달려 나가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