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으로

1929년 로제 형제는 태어나자마자 안팎으로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로제가 태어난 다음 해, 그의 일가는 아버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극한 시베리아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영하 65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시베리아의 겨울은 매우 춥다.

판결은 종신형이었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종신형을 받고 떠나는 그들을 조롱하였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시베리아에서 과연 너희를 도와주는지 보자. 그러나 너희들은 살아서 시베리아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 땅이 너희들의 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생각했을 것이다. 시베리아에서 동사(凍死)할 것으로. 하나님은 왜 이처럼 때때로 우리를 끝이 보이지 않는 곤란한 길로 몰아붙이시는 것일까?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시는 분이 아님이 분명하다.

종신형이 언도되었을 때, 로제의 아버지는 매우 침착하셨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놀라지 마라. 침착하라. 이것은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길이다. 하나님은 잘못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조용히 순종해야 한다.”

로제는 훗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의 아버지는 지상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놀라운 보물들을 극한의 시베리아로 가지고 가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경책이었다. 우리들을 지하실로 불러 작은 포켓용 성경을 한 장 한 장 찢어, 입고 있는 옷 안쪽에 기웠다. 아버지는 두꺼운 옷 대신 시베리아의 추위와 맞서 싸울 말씀의 갑옷을 입히고 계셨다.”

시베리아로 가는 도중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었던 아이들은 혀로 얼음을 녹여서 목을 축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너무 추워서 혀가 얼음에 붙어버려 억지로 떼려고 했기 때문에 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울부짖으며 외치자, 아버지는 기도를 하시고는 “아이들아, 조용히 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인도하시려고 하는 곳까지 데리고 가주시는 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곳에는 덮을 이불도, 따뜻한 방도 없었다. 오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숱한 고문과 투옥, 가축 이하의 생활이었다. 그는 40살까지 배부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었고, 15살까지는 세상에 단 것이 있는 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 혹독한 고통과 추위 속에서 하나님의 불꽃을 보았다.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시베리아도 만드셨다. 혹독한 겨울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영혼의 겨울을 허락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셨다.


눈물 흘리는 밤

몇 주 전 목요일, 어머니께서 넘어지시면서 골반과 대퇴부가 골절되어 3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수술 날짜는 그 다음 주 화요일로 잡혔다. 하룻밤도 넘기기 힘겨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살짝만 움직여도 비명을 지르셨다. 너무 고통스럽고 지치셨는지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고 하셨다.

지난해에는 대장암 수술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는데, 꼼짝달싹할 수 없는 몸으로 또다시 눈물의 밤을 보내야 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넘기시고 화요일 수술을 하셨다. 그 다음날, 큰언니가 “오늘 밤 뜬 눈으로 새워야 할 거야. 아마도 새벽 1시쯤이 가장 힘들 거야. 내일 아침 일찍 올게. 그럼 수고하렴.” 하면서 병원 문을 나섰다.

대장암 수술로 인해 어머니는 소변을 자주 보셨는데,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살짝만 움직여도 큰 고통을 호소하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깁스를 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어서 다리에 보호대만 착용하고 계셨다. 정신도 깜박깜박하셨다. 밤12시부터 어머니는 자꾸 고향인 상주로 가야 한다면서 일어나려고 하셨다. 보호대도 다른 한쪽 다리로 자꾸만 밀어내셨다. 다리를 안쪽으로 굽히면 안 되었기에 새벽 3시까지 보호대를 풀면 다시 묶어 놓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계속하였다. 이상한 헛소리까지 하셨다.

시간이 멈춘 듯, 5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치매증상이 나타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두려움이 일었다. 밖에 나가실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려도 막무가내셨다. 나중에는 화까지 벌컥 내시었다. 순간 “그러면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면서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나 자신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나.’ 하는 자괴감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나님,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두 자녀를 천국에 먼저 보내고 가슴에 묻은 것도 힘든데, 대장암에 이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하시고 치매까지 오시면 어떡해요. 지금까지도 너무 힘겨운 세월을 살아오셨는데, 이제는 그만하셔도 되잖아요? 주님 도대체 언제까지 이 고통을 주실 건가요.”

혹여나 어머니께 들릴까봐 숨을 죽이며 울었다. 아린 가슴을 끌어안고 계속 울부짖는데,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올려다보는 제자들의 모습이 환상 가운데 보였다. 그와 동시에 마음에서 “내가 너의 고통 가운데 함께하노라. 어머니는 염려하지 말라. 내가 더 좋은 길로 이끌 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찬양이 흘러나왔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난 중에 우리의 큰 도움이시라.” 벽에 등을 겨우 기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찬양을 연이어 불렀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과 홀로 무거운 짐을 진듯하여 몹시 지쳐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지친 무리 중에서 또다시 부르셔서 내 갈 길을 외로운 길로 만들고 계셨다. 그러나 선하신 우리 주님은 그 외롭고 쓸쓸한 길에서 얼어붙은 나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심고 계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셨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시84:6).

눈물 흘리는 밤 없이는 주님의 고통도 사랑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수많은 눈물의 골짜기를 홀로 지나가야 한다. 지치고 힘들어도 외로워도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곳에 은혜의 샘이 있다. 영혼의 혹독한 겨울, 외로운 투쟁은 주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주님은 이 땅에서 안락한 삶을 약속치 않으셨다. 날마다 광명한 날이 되리라 안 하셨다. 그 길은 길지 않으리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늘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리라 말씀하셨다.

어느 어려움을 많이 겪은 100세 되신 할머니의 말이다. "그 세월이 눈 깜박할 사이에 흘러갔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자리는 더 이상 고통의 자리가 아니다. 외로움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나와 함께 가장 풍족하고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고 계신 중이다. 영혼의 겨울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조용히 순종하면 곧 큰 기쁨의 아침이 온다. 가장 깊은 암흑의 밤을 보낸 후에 누릴 수 있는 보석과도 같은 아침을. 그 보물은 세상의 그 어떤 것,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놀라움으로 내 영혼을 만족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