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사도 바울께서는 너무나 큰 비밀을 로마서에 기록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

이 비밀을 알았기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고 고백을 하며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전심전력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 일어날 징조를 계시하는 말씀(이스라엘 민족의 고토귀환, 천하만국에 복음이 전파됨, 적그리스도의 준비, 교통수단과 지식의 고도발달)들이 거의 이루어져 가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너무나 나태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성도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 회개를 강조하지 않고 오직 세상적인 축복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부흥이 아닌 육적인 부흥에만 신경쓰다보니 교회 증축 같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어찌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강퍅해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점점 복음의 문은 닫혀 갑니다. 전도를 해도 세속적인 것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고, 병 고침을 받고, 사업이 잘되게 된다는 등의 말로 복음을 전합니다. 실상 왜 주님을 믿어야 하는지는 속 알맹이는 쏙 빼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초림 하시어 공생애 사역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어디에도 예수님을 믿으면 사업이 잘된다, 세상 복을 받는다, 병 고침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니 그런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시련이 닥치면 넘어지고, 실족하여 주님이 없다하며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 허풍 같은 복음이 아닌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했던 순순한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시기 까지 하셨던 주님의 그 한없는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적이고 기복적인 것을 첨가하지 않고, 내 사상을 가미하지 않은 조금의 누룩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복음, 무교병과 같은 말씀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또한 입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닌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이 온전치 않다면 그 누가 전도자를 보고 주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빛이 드러나는 전도는 향기가 되어 빠르게 퍼져 갑니다.

주님이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모르는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지막 남은 열정을 가지고 작은 바울이 되어 밝은 빛·무교병·맑은 물의 말씀을 들고 복음을 전하길 예수님은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