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회복하는 사순절
얼마 전 한 지인이 보내준 SNS를 보면서 크게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잘 알고 있는 계시록 2:4,5절의 말씀이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첫사랑과 열정을 잃어버린 것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더욱 갈급한 심정으로 이번 사순절을 계기로 영적인 부흥과 회복을 갈망한다. 
 
무기력과 권태
근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영적인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몰려 언론의 질타를 받고 이에 화풀이 대상을 찾는 사람들은 부화내동 하여 교회를 질시하고 냉대하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교회는 부당한 핍박과 감시대상이 되어 예배도, 기도도, 소그룹 모임도 제대로 갖지 못하다보니 더욱 심령이 메마르고 곤고해졌다. 30년 가까이 목회를 하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과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대안이 없는 현실이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다들 코로나 사태가 위기라고 하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할 것 없이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환경으로 인해 무기력과 권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묵묵부답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영적인 기갈이 자못 심각하다. 이런 영적인 기근은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도덕과 양심, 신앙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난국에 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치 극심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같은 느낌이다. 한때 교회에서 얼마나 예배, 찬송, 기도, 성경공부가 풍성했는가. 하지만 이를 통해 성도들의 인격적인 변화나 영적인 성장은 얼마나 있었을까. 문제는 무엇인가. 교회가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약1:27)고 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힘들고 어렵지만 내 힘과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니 영적인 무기력과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마냥 웹 서핑과 동영상이나 클릭클릭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심한 모습을 회개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잃어버렸으니, 다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진하게 느껴보자.
이번 사순절을 통해 다시 자신을 비롯한 한국교회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무릇 부흥이라 함은 하나님의 성령이 강력한 기름부음으로 역사해야 가능한 일이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강력한 부흥에는 반드시 회개와 간절한 기도가 먼저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합당한 사역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 성령의 부흥을 주셨다.



회복과 부흥
요한 웨슬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찬란한 빛이 강하게 임하여 어두움이 쫓겨나고 사회 전체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가 한번 지나간 마을이나 도시마다 음란하고 포악한 사람들이 온순하고 겸손해지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한 번 불붙기 시작한 웨슬리의 설교는 더욱 활활 타올랐다. 운동장, 빈 창고, 산, 언덕 할 것 없이 언제나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성령의 놀라운 감동으로 자신의 죄를 깊이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잘 차려입은 신사가 마치 죽기라도 하듯 자신의 죄를 자복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바닥에 뒹굴고 울부짖으면서 강력한 은혜 속에 몰입되었다.
조지 휫필드의 설교는 말 그대로 불덩이였다. 막혔던 화산이 터져오를 때 더 높이 치솟는 것처럼 그의 설교도 불꽃을 뿜어냈다. 그때까지 하나님이란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던 광부들까지 감동되어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신 분이시다.'라는 고백을 절로 하였다. 처음 설교할 때는 200명이 모였는데, 갈수록 늘어 나중에는 무려 1만 8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홍수를 사람의 손으로 막아낼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러합니다.'라고 그는 고백하였다.  
찰스 피니가 뉴욕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위로부터의 권능이 급류처럼 사람들 위에 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심장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찔림으로 다가와 온 회중은 저들의 죄를 고백하며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애통하며 울부짖었다. 말씀 하나하나가 마치 칼이 심장 속에 파고드는 것처럼 역사하여 전율이 일어났다. 이렇게 강한 성령의 역사는 마을 전체에 임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충만해져 곳곳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영적 대각성이 지나간 자리에는 낮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비천함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된다. 예수님을 닮기 위한 강력한 몸부림과 함께 실제 생활인격에 변화가 일어난다. ‘잃어버린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도 되찾을 수 있다.
무기력과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뜻을 정하여 사순절의 절제 규례와 작정 기도를 시작하자. 다니엘은 포로 된 바벨론 왕궁에서도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금하고 채식하는 절제생활을 계속하였다. 후에 총리가 되었을 때, 다리오왕은 30일간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명을 내린 일이 있었다. 정적들의 계략임을 알았지만, 정해진 규례대로 하루에 세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은 원칙에 충실하였던 다니엘을 구원하시고 더 높여주셨다.
하나님은 다니엘 선지자와 같이 뜻을 정하여 영적인 규칙들을 충실하게 지키는 일군들을 기뻐하신다. 평소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편인데, 성경과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약속한 경건 규칙, 신앙의 전통과 원칙을 철저히 지킨 성도들을 보면 존경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영적 대각성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영적 가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 회개해야 할 죄이고 버려야 할 어두움의 행실인가를 대각성할 수 있는 성령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세상을 향한 가치관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죽은 교리가 아닌 살아 역사하여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처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물결에 단호하게 'No'라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여,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심령을 깨워주소서. 자비하신 아버지여! 한국교회에 다시 한 번 요원의 불길처럼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엄위하심과 살아 계심을 만민으로 알게 하소서. 회개의 눈물이 온 몸을 적시도록 통회자복하게 하소서. 자신의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처음사랑과 처음 행위를 되찾는 부흥이 있게 하소서!”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