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칠 수는 없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1:6)란 표현이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한다. 우리야의 아내는 밧세바다. ‘밧세바에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녀의 남편 이름을 등장시켜 다윗이 살인자임을 천지에 공개한다. 죽은 첫 아이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 불륜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우리야의 아내에게서’의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둘째 솔로몬의 출생은 우리야가 죽어 1년이 넘어 사망 신고서가 이미 접수되었을 때이고, 밧세바가 다윗의 왕비 중 하나가 되어, 당당히 낳은 왕자인데도 수치의 못을 단단히 박는다. 합법으로 원만하게 정리되었고 그럴싸하게 꾸미었다 해도 동기가 간통이었기 때문에, 지울 수 없는 금강석 끝 철필로(렘17:1) 죄를 선언하는 하나님의 공의이리라.
다윗의 죄는 추악하지만 철저한 회개로 용서받았고 회복되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동에서 서쪽으로 멀리 옮기듯(시103:12), 기억도 않으시고(사43:25), 안개처럼 없애시며(사44:22), 주홍빛 죄를 희게 하시고(사1:18), 깊은 바다에 던지는(미7:19) 특별사면이다. 일단 하나님의 소속이 되면 그 손에서 빼앗을 자 없으며(요10:2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가 없는 영원한 구원을 든든히 약속받는다(롬8:1).
그러함에도,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특별 단속을 항상 받는다(눅21:36). 이유는, 영접 이후에도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으로 기울어지고(롬7:19)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기는(롬7:25) 해괴함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이 육신, 친구인 동시에 원수인 이 육신”(요한 클리마쿠스). “육신은 애욕에 빠지기 쉽고, 비열하고 야행성이다”(성 그레고리).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일생을 살았다(고전9:27). 둘째,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벧전5:8) 마귀 공격이 집요하고 치열하기 때문이다. 셋째, 세상유혹이다. 하나님의 추천과 사무엘 선지자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에 짝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령했던 사울도, 왕권을 누리기 시작하자 변질이 되어 성령은 떠나고, 악신의 지배를 받아(삼상16:14) 드디어 버림을 받게 되는, 슬픈 사연들 때문이다(삼상 16:1).
하나님의 은총으로 완벽하게 용서받았는데도, 다윗의 자식들은 부친의 범죄 현장을 꼿꼿하게 재현했다. 형제간에 간음과 살인을 저지르며 왕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우렁찬 경고다. 행한 대로 갚으시고(시99:8) 법에 따라 징계하시고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으셨다(렘30:11). 죄는 용서받으나 취소되지 않음이다. 용서받은 죄인이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의 빚진 자 한 사람이(1조 원 정도) 주인의 절대적인 자비로 탕감을 받았다. 죄의 용서다. 그러나 그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몇십만 원 정도) 빚진 자를 만나자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뒀다. 이 소식을 듣자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다”(마18:34). 종신형, 지옥이다. 죄가 취소되었다면 어떻게 다시 갚으라고 옥에 넣을 수 있을까. 은혜 아래 있을 때에는 꽁꽁 죽은 죄들이, 은혜에서 벗어나는 순간 평생에 지은 죄들까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고 지옥에 밀어 던진다. “과거에 죄를 용서했던 것을 철회하고 빚의 탕감을 취소하였고. 그리하여 그에 대한 심판이 부활되었다”(매튜 헨리).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치 않으면 너희 죄를 용서치 아니하신다는 예수님의 선언 그대로다(마6:15). ‘한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들은 회개할 수 없나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함이라’(히6:4-6). 은혜는 균등하지만 심판은 공평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당신의 가슴팍에, 평생 새길 계명이다. 예수님은 성공하신 분이 아니시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분이시다. 십자가 외길만을 밟아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