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첫사랑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

영원처럼 두렵고 떨리는 기도

멈춰버린 시계바늘 사이로

비밀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나다

 


정갈한 흰 옷 입고

길 떠나는 날,

나의 첫 마음 위해

태초부터 준비하신 아버지의 사랑

 


이제부터는 푯대만 향해 가라

미지근한 내 등 미시는

골고다의 붉은 십자가

 


오래 참아 오신 거룩한 인내가

나보다 앞서 가며 길을 내고 있다

/ 이소진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첫사랑의 순간을 떠올린다. 다시는 오지 않을 영원의 순간 같았던 설렘의 기억들, 주님만 보여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들, 처음 순결한 사랑을 고백하며 울던 첫 사랑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날들을 다 잊고 타성에 젖어 광야 길을 가다보면, 항상 내 앞에서 인내로 길을 여시며 먼저가시는 주님을 만나곤 한다. 이제 어디서 잃었는가 찾아야 하는 나의 첫사랑, 그날의 감격, 목숨도 아깝지 않을 충성의 순간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함을 벗어던지고 올곧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사순절은, 골고다의 주님과 함께 걸으며 첫사랑을 다시 찾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