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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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 늙은 감나무 가지사이로 맑은 가을 햇살이 드리웠다. 노랗게 물든 감잎사귀 틈으로 빨갛게 익은 홍시가 고개를 쏙 내밀고 있다. 지난 봄 아랫집 아저씨가 볼품도 없고, 늙어서 열매도 많이 열리지 않는다고 감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하기에 사정사정해서 살렸다. 봄에 노오란 감꽃이 많이 피었는데, 여름 태풍과 비바람에 감나무 가지가 찢어지고 감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뒤에 또 태풍이 불어서 떨어지고, 8월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불더니만 거의 다 떨어져 버렸다. 바닥 여기저기 떨어진 땡감을 한 입 먹어보니 떫어서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봄부터 장맛비와 천둥번개와 태풍과 비바람을 맞고도 용케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붉은 홍시가 참으로 신비로웠다. 모진 비바람을 겪지 않은 열매가 어디 있겠냐마는 이 가을 내 영혼이 얼마나 저 빨간 홍시처럼 익어, 우리 주님을 닮아 가는지 괜스레 감나무만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어릴 때 임금님 모자같이 생긴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일찍 떨어진 감을 장독에 담아 따뜻한 이불 밑에 넣고 감이 갈색 빛으로 익으면 한 입 뚝 베어 먹곤 했다. 빨갛게 익은 홍시를 긴 막대기로 따먹는 재미가 있었다. 다람쥐처럼 감나무 위에 올라가 손을 뻗어 멀리 떨어진 홍시를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었다. 깊어가는 가을 숲속에서 풀벌레들이 울어댄다. 청국장을 끓여놓고 저녁식사 종을 치려는 내 마음에 쌀쌀한 가을바람이 스치며 어린 시절도 함께 스쳐갔다. 초등학교 시절, 모든 일에 서툴던 나를 도와주던 마음 예쁜 짝꿍도 그립고,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맘을 전하기 위해 빨간 홍시를 도시락에 담아 갔다가, 마침 그 아이가 도시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전해주지 못해 속상해하던 순박한 마음도 그립다. 주님을 닮은 순결한 딸들도 그립고 영적스승이셨던 선생님도 그립고, 무엇보다 영원한 신랑 되실 주님이 몹시도 그립다.

우리의 인생도 빨간 홍시처럼 익어지기까지 육신은 점점 쇠하고 눈물로 이 광야 길을 걸어야함을 깨닫는다. 비바람과 까치들이 날아와 콕콕 쪼아대는 모진 고통 속에서도 대롱대롱 끝까지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홍시가 발그레한 얼굴로 나에게 미소를 짓는다. 맑고 투명한 푸른 하늘도 나에게 손짓한다. 차가운 서리와 눈보라를 맞고, 겨울 낙엽처럼 가까운 이웃들과 동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더라도, 거친 세상풍파가 몰아닥치더라도, 저 홍시처럼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꼭 매달려 있으라고 당부를 한다.

발그레한 붉은 얼굴에 어느새 검버섯이 하나둘 피어나고, 몸도 점점 쇠약해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들이 내려앉았을지라도 내 몸은 주님께 대롱대롱 붙어 있을 것이다. 끝내 마지막 날 짐승(적그리스도)에게 먹잇감이 될지라도 대롱대롱 주님께 매달려 있으련다. 사자의 밥이 되어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까마귀 떼들이 몰려와 몸을 이리저리 쪼아 먹을지라도 붉은 홍시처럼 붉은 피를 줄줄 흘려가며 죽어가련다. 우리 주님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려 피한방울, 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내어주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받기까지 이 죄인을 위해 그 붉은 피를 다 흘리시며 죽어주신 것처럼, 나도 이제 피한방울 물 한방울 남김없이 다 내어주련다.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어 빈 몸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내 마지막 바람이다.

불후의 세계적 명작 신곡을 쓴 단테가 어느 날 피렌체 길목에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고는 한순간에 한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이후 그는 꿈만 꾸고 사는 애달픈 짝사랑을 시작하였다. 천사 같은 그녀의 모습을 단 한번 보았을 뿐인데, 그의 가슴속에는 고상한 소원이 타올랐다. 자신이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존재가 되리라고 스스로 마음에 다짐을 하였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25세 꽃다운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로 그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단념하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직 신의 은총에만 매달려 자신의 삶을 회개하는 겸손한 순례자로 변했다. 신곡이라는 작품 속에서 깨끗한 처녀 베아트리체는 하늘에 계시와 천국의 길을 안내하는 상징적 포상으로 승화되었다. 9세라는 어린 나이에 느낀 첫사랑을 그의 가슴에 순결한 별로 승화하여 5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순결하고 정결한 영혼으로 인도되어졌다.

나의 영혼을 사로잡은 거룩한 여인은, 이름만 들어도 거룩한 열망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녀의 이름은 젬마 갈가니. 외모를 가꾸는 뭇 여성들과 달라도 너무나 달라 거울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한평생 얼굴을 꾸미거나 몸을 단장하는 법이 없었다. 의상이라고는 단순한 모양의 검은 색 옷 한 벌과 그 위에 걸치는 망토 하나가 전부였다. 이웃들과 친척들이 지나칠 정도로 검소한 그녀에게 여성으로써의 특권임을 주장하며 제발 외모에 신경을 좀 쓰라고 타이르며 권했지만 의복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어떤 특별한 행사의 모임에도 항상 같은 옷 뿐이었다. 소유물로는 홑이불과 수건 몇 장, 십자가 고상 한 개, 손 때 묻은 기도 책 두서 권을 넣어둔 조그마한 나무 궤짝 하나밖에는 없었다. “저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가난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위하여 극히 가난합니다.” 가볍고 경쾌하게 가난을 받아들였다. 간혹 사람들이 귀한 선물을 주어도 될 수 있는 대로 그것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찾아내 그에게 주어버렸다. 자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소유하지 않는 것이 마음을 평정케 만드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병이 위중해 고통이 극심할 때에라도 다른 사람이 괴로움이 될까 우려하여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될 수 있는 대로 자기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삭였다. 물욕에 대하여도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착심 역시 철저하게 억제했다. 밝고 빛나는 눈은 항상 정숙한 태도로 늘 아래로 내리뜨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흡사 천사를 보는 듯 했다. 무엇보다 가장 뛰어나게 빛나는 것은 천진스러움과 순박함이었다. 짧은 순간 무언가를 생각할 때에도 아주 단순하게 순결한 생각만을 품었고, 다른 사람에 관한 악담을 들을 때도 결코 나쁜 쪽으로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평화롭고 명랑하고 침착하고 거룩한 빛이 흘러내렸다.

베아트리체나 젬마는 물론이거니와 착한 마음씨를 가진 나의 어릴 적 짝꿍이나 의롭고 진실하게 잘 익어서 지금은 주님 나라에서 참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해 저무는 저녁, 늙은 감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답할 것이다. “. 저는 주님의 평화를 원합니다.”

이 세상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오직 주님의 평화만을 지니고픈 작은 자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요 한 가지 유일한 바람이다. 노란 감나무 한 잎이 손등으로 스치며 떨어진다. 닿는 촉감에 나의 손도 가슴도 함께 떨린다. “우리 주님 언제 오시렵니까? 올 정초부터 이스라엘, 아프리카, 유럽, 동남아시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 전하다 주님 곁으로 가고 싶었는데, 아직도 살아서 숨이 헐떡이고 있습니다. 떫은 땡감처럼 덜 익어서 그러겠죠?”

언제나 마음가운데 사랑하는 주님만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하시던 선생님의 가르침이 가슴에 사무치건만, 죄인 된 나는 아직도 덜 익고 떫어서 주님과 이웃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주님만 생각하면 사랑에 목마르고 그리움으로 몸을 떠는 주님에 취한 붉은 열매가 되고 싶은데, 아직도 주님을 온전히 닮지 못함에 스스로 애달픈 마음만 가득하다. 차가운 바람이 불때마다 가련함으로 눈물만 훔치는 나는 여전히 돌팔이 목회자다.

붉은 홍시처럼 온전히 익어가기를, 거룩한 신부들의 순결한 눈빛을 소유하길 간절히 바라며, 아직은 익지 못해 서글픈 삶이지만, 조금 더 모진 시간들을 감당해 가면서 주님 앞에 사랑으로 익어가길 원한다. 오늘 주어진 작은 평화를 소중하게 안고,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더 정진할 것이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