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 때까지 더욱 분투하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들은 주님이 정해주신 틀 안에서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이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히12:1). 그들은 언제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 거룩한 발걸음을 끝까지 포기치 않았던 분이셨다. 물론 그분들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위기의 순간을 인내로 잘 극복하며 끝까지 달려가신 분이셨다.

평양의 사도바울이라 불리는 이기풍 목사님(1865-1942)은 청년 시절에 노방 전도를 하던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턱을 깨뜨렸다가 주님을 만나고 회개하여 목사가 된 분이다. 제주도에 가서 목회를 하였는데,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예수교를 전하는 그를 꺼려하였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면 주민들은 손사래를 치면서, “설러버려 설러버려 야가기 끊어 지갠”하며 도망을 쳤는데, 이는“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라 내 목이 달아난다”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무심코 제주도의 풍습에 대하여 평양으로 적어 보낸 선교 보고서의 내용이 제주도민들을 불쾌하게 만들어,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너무도 힘이 들고 괴로워서 제주도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편지로 써서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보냈는데, 두어 달 후에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 “편지를 잘 받았소이다. 그런데 당신이 내 턱을 때린 흉터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으니 아물 때까지 더욱 분투하시오.” 그는 그 편지를 받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하며 회개를 하였다.

그의 선교의 길은 고난 그 자체였다. 6남매 중 셋째 아들인 사준은 10세 때 제주도에서 죽었고, 넷째 아들 사영은 2세에 광주에서, 그리고 첫째 딸 사라는 18세에 순천에서 죽었다. 그의 딸 이사례 권사의 증언에 의하면, 이는 불철주야 전도에만 급급하여 병든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까닭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바디의 은혜 감사합네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외다.” 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선교사로서의 본분을 다하였다.

1차 제주 선교를 마친 후에는 전라도 내의 벌교교회로 파송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여러 마을을 돌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너무 열정적으로 전도한 탓에 성대에 이상이 생겨 말을 잘 못하게 되었고, 관절염과 귓병 등의 지병을 앓게 되어 할 수없이 목회를 사임하고 서울로 올라와 요양 생활을 하였다. 병이 어느 정도 완쾌되자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는데,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작은 섬 여수군 남면 우학리에 들어가 목회를 하였다.

이후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맞서서 신앙을 지키다가 미제의 앞잡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날 배반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예수님을 배반하겠는가?”라는 일념으로 버티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75세로 소천 하였다. 예수님의 피 묻은 상처를 그의 온몸에 새긴 채로.

한편 믿음의 산 증인이셨던 주기철 목사님(1897-1944)이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다가 잠시 풀려나오자, 가족과 교회 식구들과 이웃 사람들까지 무슨 금의환향하는 사람을 마중하듯 들떠서 달려왔다. 파리한 얼굴, 충혈 된 눈, 끝없이 터지고 찢긴 살과 으스러진 뼈, 헐렁한 겨울옷, 아직도 갈 길은 아득한데… 이 무슨 환영인파인가. 그 환성 속에서 그는 다시 이어질 끔찍한 고문을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미소를 떠올렸다. ‘잠시 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라 하시는구나.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라 하시는구나.’

고문을 당하면서 육체의 한계에 떨었던 일이 몇 번이었던가. 혹여 혹독한 고문에 헛소리를 할까 보아 두려워했던 일이 몇 번이었던가.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남몰래 눈물을 흘린 일이 얼마였던가. 계속되는 배고픔과 끊임없는 위협과 고문 속에서 포기하고 싶은 유혹인들 왜 겪지 않았겠는가. 남들은 그를 이미 위인이라고 불러주지만 철저하게 홀로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몸을 한 채 또다시 쓰라린 불구덩이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끝까지 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주님의 손발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피로 엉겨 붙은 으스러진 주님의 온 몸과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심비에 또렷이 새겨진 주님의 사랑의 흔적들은 그로 하여금 순교자의 자리로까지 나아가게 하였다.

믿음의 선진들이 광야 여정 속에서 거쳐야 했던 장애물들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있다. 거친 세상에서 풍파가 위협하거나 난관 앞에 부딪칠 때 주저앉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다. 내 몫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더 작은 십자가를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임의대로 십자가를 톱으로 쓱쓱 자를 때도 있고 놓쳐버릴 때도 있다.

주님은 그때마다 말씀하신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아물지 않은 나의 못 자국 난 손을 보라. 고된 일 하다가 지쳐서 쓰려질 때면 아물지 않은 나의 발등을 만져보라. 마음이 답답하고 눌릴 때면 아물지 않은 나의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라. 나와 다시 이 길을 함께 걷자구나. 용기를 내어라. 나의 피 묻은 두 손으로, 피 묻은 두발로, 찢기고 파 헤쳐진 나의 피 묻은 가슴으로 너의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저는 다리를 고치고 싸매고 치료하였노라. 갈기갈기 찢기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나의 두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를 바라보아라. 이 길은 눈물 없이 피 없이 못가는 길이다. 모두가 조롱하는 영문 밖의 길, 제 아무리 좁은 길일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까지 쉼 없이 이 길을 달려가야 한다. 칠전팔기 할지라도 제 십자가 바로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길을 올라가야 한다.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야 한다. 나의 온 몸에 새겨진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까지 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분투하라. 그곳에 승리의 비결이 있다.’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끈기 있게 지고 가노라면, 나중에는 그 십자가가 나를 짊어지고 가게 된다는 준주성범 말씀이 떠오른다. 아직은 내 손을 보아도, 내 발을 보아도, 내 얼굴을 보아도 저 믿음의 선진들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의 증표인 피 묻은 영광의 상처가 없지만, 아물지 않은 주님의 상처를 내 온 몸으로 체험하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한다. 비록 그 길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어지는 고통과 수욕의 자리일지라도 주님이 계시는 그 자리까지 기꺼이 가려고 한다.

상처 난 아픈 자리 자리마다 영광의 십자가를 하나 하나 세우며 주님처럼 그렇게 가야 한다. 나로 인해 생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너무나 많고, 하나님의 상처 또한 깊고 진하게 패여 있다.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더 분투하며 달려가야만 한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