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큰 신앙적 오류가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분주하게 열심히 하면

"신앙이 참 좋은 사람이야.

 믿음이 참 좋은 사람이야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혀 잘못된 얘기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신앙의 열정과 열의를 말할수는 있지만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 라고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역시 한떄 교회에서 교사, 성가대, 잔일을 도맡아 하면서 나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김선생은 믿음이 참 좋아. 사랑이 많아. 신앙이 좋아 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별 생각없이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것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습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마음과 전혀 다를바 없는 모습이었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젼혀 인식하지 못하면서 무감각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신앙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 것이지

결코 신앙생활은 아니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보시는 그 하나님앞에 내적인 신앙의 증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실체적인 신앙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교회에서 열심히 일해도 전혀 제 모습은 주님을 닮지 않았었답니다

그리고 닮는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닮는것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바쁘고 분주한 일상의 하루하루 였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한

그리고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마음들이

은혜받은 그 마음보다 날이 갈수록 더더욱 커져갔답니다

 

그 당시 교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십자가에 대한 주님에 대한 애뜻함이 별로 없었답니다

찬양할때 잠깐 기도할떄 잠깐 좋다말다하는 감정의 변화였을뿐

근원적인 기쁨이나 깨달음이 없었답니다

 

그저 교회성장론에 필요한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답니다

성가대를 하면서 기쁨과 감동으로 부른것도 아니었고

내 삶이 주님을 찬양하는 삶도 아니았고

 

교사를 해도 아이들의 영혼을 주님의 심정으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습관적인 공과공부의 연속이었답니다

제 삶이 감동적이지 못하면서 아이들앞에서 폼만잡는 

결국 허상적인 얘기들의 지식적인 얘기들의 나열이었답니다

 

나름 열심으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줄려고 떡볶이도 사주고 맛있는거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 잘대해주는 교회선생님 정도였지

참신앙을 심어주지는 못했답니다

율법적인고 교리적인 얘기들만 많았을뿐

 

제게 참신앙이 없었기에 주님의 고통과 눈물을 사랑하지 않았던 저 였기에 아이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가르쳐 줄 수 없었답니다

 

너무나 회개할 일이 많네요 지금 돌이켜 보아도 눈물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앞에서 완악하고 말만 많은 사람이었는지를...

아이들의 한영혼 한영혼을 돌아볼수 있는 많은 시간에 저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회개할 일 밖에 없네요

 

눈물없는 교사를 보면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교사를 보면서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배웠겠습니까

어리지만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은 그 심령들은 다 느끼는 것인데...

 

저는 분주한 교회생활을 했지만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받은 마음이 한가지였다면

의무감과 자존심과 체면은 열가지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더욱 하나님께서 기쁘하시지 않은 마음으로 가득차게 되었던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르다 같은 제모습을..

알맹이 없는... 모양만 갖춘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누가복음10장      마리아와 마르다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이 다른

첫번째 이유는 제 자신이 주님을 닮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적 증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위에서도 조금 언급한것처럼

은혜받은 마음보다 죄의 현상들이 많았었다는 것입니다

(선햔모양만 갖추었을뿐 결과적으로 불의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처럼

생각의 바리케이트 속에서 좋은 말들로 교회안에서 나를 포장합니다. 서로 겉치례적인 칭찬의 일색이었습니다

내 자존심과 체면을 사수하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한 일상들이었습니다

 

이런 외식적인 내 모습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잘 하나 보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인정해 주시겠지

이렇게 교회에서 열심히 하니까 심판대 앞에서면 이렇게 내가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열심히 한것을 인정해 주시겠지

이런 것들이 나를 천거해 주겠지

라는 전혀 얼토당토 하지않은 착각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은혜가 한가지였으면

불의한 마음들이 열가지였습니다

 

교회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의무감도 외식과 보상심리와 강박관념으로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결국 선한 모양만 있었을뿐 

선한 모양을 가장한 불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에

제 중심이 전혀 하나님께서 기쁘하시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교회에서도 일시키기에 급급한...

인정해주는 말에 서로 익숙한...

좋은 포장의 말들만 가득했습니다

 

나는 날이 갈수록 바리새인과 닮아가는데

어떻게 된게 주님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닮아가는데 인정해주는 말만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 편의주의적인 사고 속에서 자기자신에게 너무나 후한 점수를 줍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나는 하나님의 기쁨이고

나는 주님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자녀가 과연 무엇인지...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제자가 무엇인지...

 

전혀 하나님께서는 자녀라 제자라 인정하시지 않으시는데 혼자 인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것입니다

그 삶이 자녀라면 제자라면 말하지 않아도 천거가 될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러한 행동이나 봉사를 하는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거야 라고 말하지만 자기 생각의 바리케이트속에 스스로 속고 속이는 것이지

그 심령이 하나님앞에 정결하지 않다면 그 삶이 감동적이자 않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그 말이 얼마나 허망한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죄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에

 

-삶에 감동이 없는 마음에 감동이 없는 주님의 그 아프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종교적 열심만 가득한 자신을 전혀 바리새인이 아나리는 착각을 아주 견고하게 합니다

 

교회성장론에 너무 바쁜나머지

 

-한 영혼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쁘하시는 온전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나 라는 고민보다 큰 건물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에 급급한 양적인 팽창을 하나님영광이라고 말하는 오류들을 봅니다

천만 기독교인이 다 천국가면 그게 한국이지 천국이냐 는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런 천국이라면 어떤 모습일런지

아마 별로 가고싶지 않은 천국일거 같네요

 

신앙을 자기 편의주의적으로 맞출려는 것에서

 

-믿으면 장땡이라고 해야 하나요

출애굽기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데 내가 당연히 믿었으니까 천국갈거라는

그 생각이 과연 심판대 앞에서도 통할런지...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구원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면

행한대로 갚으신다고 하셨는데...

구원은 자녀의 삶이라면 제자의 삶이라면

당연히 받겠지요 확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 봅니다

(그리시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진정으로 바라본다면 구원의 삶이 있겠지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그 마음을 헤아리는데 별로 관심도 없는...

자기사연과 상처와 욕심속에서 움직이고 생각하면서 주님의 뜻이라는 많은 착각들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얘기하자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신앙이 좋다라고 말할수 없는 이유는

 

첫째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앞에

과연 내가 주님을 닮은 모습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적 증거가 있는지를...)

 

두번째는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그 이면에 죄의 현상과 모습은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모양을 가장한 불의)

 

교회생활을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주님을 닮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생활의 선한 모양은 있지만 본질이 없다면 고요한 중에 자기를 예민하게 살피지 못한다면 그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분주하게 일하는 마르다보다

주님곁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참신앙인의 모습이겠지요

끝없이 근신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살필수 있는것이 진실한 신앙을 이룰수 았는 길일것입니다

 

내 안에 정결하지 않은 수많은 죄의 실상들을 파악하면서

참회개로 상한 심령으로 주님앞에 나아갈수 있는

그 회개넘으로 온전한 기쁨을 누리면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나님꼐 드릴수 있는

그리하여 하늘의 아버지가 온전하신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48절)의 말씀의 정점까지 닿을수 있는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이 되기를 저는 소망합니다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면

 

온전한 신앙만 남을 것입니다

 

교회봉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본질을 깨닫고 자신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의 요지에서 쓴 것이니 부디 오해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1장과 시편 51편을 올려봅니다

 

마당만 밟는 다는 것에 제 모습이 아닌지...

주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상한 심령이라 하셨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었는지...  

 

 

이사야 1장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려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재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시편51편

 

16절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히시니이다

 

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얼마나 가슴을 치게 하는 말씀들인지 모릅니다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하나님꼐서는 얼마나 한없이 외로우실지...